식량전쟁
지난 반세기, 인류는 역사 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과학영농기술의 발전, 종자개량, 비료 및 농약사용의 증대 등에 따른 ‘농산물의 획기적인 생산량 증대’는 계절과 시간의 구애 없이 언제 어디서든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곡물 자급률이 채 30%도 되지 않는 우리나라도 창고마다 곡물이 넘쳐나고 있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처리문제는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지독히 가나했던 시절 밤새 안녕을 묻는 인사말이 “식사하셨어요”였던 불과 삼십여년 이전의 풍경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 안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농업기술의 혁명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그러나 농산물 대국이 아닌 국가에서의 ‘식량 해방’은 더 높은 차원의 제도적 시스템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그것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은 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보고 비교우위 경제이론으로 세계 각 나라를 분업화하려는 서방 자본주의의 의도에서부터 출발했다. 태생적으로 가진 자의 끝없는 탐욕이 근저에 깔려 있었던 만큼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달콤함은 길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부의 편중으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의 폐해가 노출되고 있다. 영양과다 섭취로 인한 비만, 고혈압, 당뇨 등의 성인병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10억 명 이상의 인구는 만성적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5초에 1명씩, 하루 약 1만8천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 생산량의 감소다. 기후온난화로 인한 세계적인 사막화의 진행, 지진과 폭우, 폭설 등의 재난의 증가, 사탕수수, 고구마, 옥수수 등을 이용한 바이오연료의 생산량 확대는 식량위기의 서막을 알리고 있고,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14억 인구의 중국과 12억 인구의 인도가 새로운 식량 소비의 블랙홀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세계적인 지각변동의 키워드가 ‘식량’이 될 것이라는 진단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미 ‘식량 전쟁’은 시작됐다는 관측과 구체적인 정황들도 포착되고 있다.
최대 식량수출국인 미국은 환경문제를 내세우며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000년 수준으로 낮추는데 협조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 식량수출을 제한할 것을 촉구하자 유럽 국가들이 찬동하고 있다. 무력으로 세계를 재패하던 시대가 끝난 만큼 식량으로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야욕이 식량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로 식품학자인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도 자신의 첫 소설 ‘식량전쟁’을 통해 식량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음모와 식량위기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기후 변화 협약에 중국이 가입을 거부하자 미국 정부가 대중(對中) 식량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을 사건의 모티브로 삼으며, 여기서 비롯된 양강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된다는 스토리를 통해 자본주의의 종말을 앞당길 뇌관으로 ‘식량전쟁’을 언급한다.
저자는 책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전후해 노골화된 서방 선진국들의 식량무기화 전략을 파헤치고 개발도상국들의 어리석은 경제정책과 식량정책을 실례를 들어 제시한다. 그는 또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다준 인류를 위한 혜택이 식량무기화를 위해 어떻게 이용되고 있으며,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이 세계의 농업과 식량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종말은 어떠할 것인지도 함께 예단한다.
저자는 특히 WTO 이후 식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광우병 쇠고기 대란을 겪었던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조명한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식용과 사료용을 합쳐 2009년 기준으로 26.7%에 불과하다고 한다. 식량위기를 예견하는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농산물 생산 장려책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식품학자로서 40여년의 식품학 연구를 통해 얻어진 식견과 통찰력으로 세계의 미래를 진단하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던지고 있다.
이철호지음/도서출판 식안연/1만2천800원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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