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전쟁 후기(유미경)
처음 후르륵 머리말을 펼쳐봤을 땐, 다소 교훈적인 내용이 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주말 내내 이 책에 빠져 읽게 되었으니 그 감동을 나누고자 한다. 이 책은 식량의 위기에 대한, 미래에 충분히 있을 법한 사실(논픽션)을 구성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반세기만에 세계최빈국에서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성장한 기적의 나라다. 하지만 빠른 성장에 매몰되어 식량주권을 지키는 데는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 적은 대로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으로서는 환경문제를 내세워 식량으로 세계를 압박할 수밖에 없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맞다, 우리가 식량주권을 지키지 못하면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사오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를 대비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저자는 그 점을 예제사건을 통해, 또 화자를 통해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최근의 광우병 사태, 유전자조작식품 문제, 종자전쟁, 곡물파동, 기상이변 등 우리를 둘러싼 현재와 미래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광우병 파동의 전후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치 광우병 얘기는 한물간 유행가처럼 어느새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책은 광우병 사태의 배경은 무엇인지,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결과는 어땠는지에 대해 확실히 리마인드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예제가 되었던 ‘식습관의 형성과정과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는 주부로서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한 주부가 3자녀를 키운 경험담인데 첫째 아이는 소간을, 둘째는 바닷가재를, 막내는 계란을 많이 먹였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커서도 어렸을 때 먹었던 그 음식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는 것이다. 물론 만약 김치를 넣은 음식을 많이 먹였다면 토종의 입맛을 가진 아이로 자랐으리라. 가난이 무엇인지 아는 5, 60대와는 달리 3, 40대의 세대는 풍요를 경험한 세대이다. 더구나 그들의 자식들인 현재의 10대, 20대들은 햄과 소시지를 넘어 피자와 햄버거, 스파게티를 일상으로 먹고 있지 않은가. 그 아이들이 글로벌한 현재의 입맛을 고수하고 있는 한, 우리는 [식량전쟁]의 표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벌써부터 누군가 정교하게 짜놓은 ‘식량 메트릭스’속에 들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식량전쟁]에는 미 의회에서 비만세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 중 벌어지는 설전이 있어 미소 짓게 한다. 한 의원은 “15세기 조선왕조실록에 소를 잡아먹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있었으며, 필요하면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된다”면서 비만세를 통과시키고 있다. 이는 아직 미래의 이야기지만 ‘비만의 제국’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식량전쟁]은 [마시멜로 이야기]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처럼 마케팅적으로 재미있게 손질된 책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되고, 또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내 밥상에서, 내가 선택하는 식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30년간 식품학을 가르치고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을 이끄는 전문가로서의 의견은 물론 역사, 과학, 경제 등 전방위적인 식견과 통찰력을 가지고 ‘식량의 위기’를 아프게 진단하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끝맺음은 장쾌하다. 2020년 한국은 통일되고 북한 출신의 학자가 ‘유전자제어기술(유전자변형기술과는 다른)’을 통해 특허를 취하지 않고 인류에게 무상으로 그 기술을 나눠 식량위기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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