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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보조금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몇몇 언론이 ‘한국농업이 보조금에 찌들었다’며 보조금 무용론을 들고 나왔다. 확실한 자유무역협정(FTA) 피해대책을 요구하는 농업계에 ‘미국·일본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으면서 우는소리 그만 하라’는 경고를 내린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농업보조금은 세계 최고 수준일까. 농업보조금을 파헤쳐 본다.
◆농업보조금은=농업보조금이란 농업 분야에 투입된 각종 정책지원금을 말한다. 개별농가에 지원하는 자금뿐만 아니라 농업에 취해지는 모든 정부 지원이 농업보조금에 해당한다. 다만 국제기구 및 나라마다 보조금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농업생산과 농업발전을 위해 취하는 모든 정책을 농업보조정책으로 정의하고, 여기에 수반되는 비용을 농업보조금으로 규정한다. 세부적으로는 ▲직접지불(직불금) ▲종자·농기계·사료 등 생산요소 가격의 하락을 통한 농가비용 감소분 ▲생산 촉진이나 통제 등을 목적으로 지원하는 보조 ▲가격에 영향을 주려고 정부가 투입하는 예산 ▲수요확대 지원 ▲기반시설 구축 지원 6가지로 구분한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재정투입은 물론 농산물의 국내외 가격 차에 국내 농산물 생산량을 곱한 금액까지 보조금(PSE·생산자지지추정치)으로 산정한다. 여기에는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이 같아진다’는 신자유적 이념이 깔려 있다.
우리 정부는 WTO와 비슷한 개념으로 농업보조금을 바라본다. 현행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보조금을 ‘정부 예산 가운데 융자를 제외한 부분’이라고 정의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기준에 따라 올해 예산 13조6371억원 중 융자금 3조1030억원(22.7%)과 기타예산(인건비·기본경비·출연금·연구개발비 등) 4조3086억원(31.6%)을 제외한 6조2255억원(45.7%)을 농업보조금으로 분류한다. 전체 예산 중 경비성 예산이나 나중에 회수하는 융자금을 뺀 모든 사업비가 예산으로 잡히는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은 농업보조금이라고 하면 농가에 직접 지원되는 자금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보조금과 직불금을 혼동하기 때문”이라며 “올해 예산 중 연금보험료 지원과 같은 복지성 예산을 포함한 직불금 총액은 1조9674억원”이라고 설명했다.
◆농업보조금 과대포장 심각=농업보조금 무용론은 농업 분야에 대규모 투융자사업이 시작된 1990년대에 등장했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후폭풍에 대비해 1992~1998년 42조원 규모의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45조원 규모의 농업·농촌 발전계획(1999~2004년)과 119조원 규모의 농업·농촌 종합대책(2004~2013년) 등 굵직한 투융자계획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농가 달래기에 급급한 정부가 보조·융자를 망라해 투융자규모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 투입된 82조원 대부분이 농업생산기반 정비, 규모화, 시설개선에 쓰였다. 농가에 순수하게 지급된 보조금 비중은 고작 3%에 불과하다. 그나마 82조원 중 23조원은 나중에 갚아야 하는 융자로, 농가부채 급증의 도화선이 됐다. 그렇지만 언론은 82조원 모두가 보조금인양 보도하면서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
참여정부가 내놓은 119조원 투융자계획도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119조원은 농업예산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수준에 그쳤지만 ‘119조원’이란 포장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보조금 과잉지원이란 질타를 받았다.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앞둔 2009년 정부가 내놓은 20조4000억원 규모의 농업분야 보완대책 역시 문제점투성이다. 국민들은 10년간 농업예산이 20조원 넘게 증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사업들로 채워졌다. 국회에 따르면 20조4000억원 중 순증예산은 2조원에 불과하다. 정부의 과대포장과 재탕삼탕 정책, 언론의 농업계 때리기식 보도가 농업보조금의 거품을 키운 셈이다.
◆선진국은 허용보조 늘려=WTO 농업협상에서는 농업보조금을 크게 허용보조(Green Box)와 감축보조(Amber Box)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허용보조는 정부서비스·공공비축·식품지원·직불제로 구성된다. WTO 규정상 감축 의무가 없고 오히려 더 늘릴 수도 있다. 선진국형 보조금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감축보조는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보조금으로 가격지지, 투입재 보조가 이에 해당한다. 감축보조는 다시 ▲총생산액의 5%(개도국은 10%)까지 사용할 수 있는 최소허용보조(De-minimis) ▲생산을 줄이는 조건 아래 지급되는 직불금인 블루박스(Blue Box) ▲무역 왜곡 보조금의 합계인 농업보조총액(AMS)으로 나뉜다. WTO 농업협상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도 AMS 감축 규모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미국·유럽과 같은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막대한 투자를 통해 농업 기반을 탄탄히 다졌고, 1993년 UR 협상 타결 이후부터는 AMS를 줄이는 대신 직불제 중심의 허용보조를 대폭 늘리면서 농가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직불금 비중 작아=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감축의무가 없는 허용보조마저 줄이는 추세다. 정부가 2011년 말 WTO에 통보한 허용보조를 보면 2002년 6조350억원에 달했던 허용보조금은 2008년 4조6732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허용보조의 뼈대를 이루는 직불금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는 2004년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2013년까지 농가소득 가운데 직불금 비중을 1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2012년 비중은 4.5%로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7년 ‘농어민소득보전 특별법을 제정하고 직불예산을 농업예산의 35%까지 높이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놨다. 그렇지만 그해 24.6%이던 직불예산 비중은 집권 첫해인 2008년 22.4%,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에는 15.2%로 오히려 축소됐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2000~2014년 국가 전체 예산은 연평균 7.5%씩 늘었다. 그렇지만 농식품부 예산 증가율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2.4%에 그쳤다. 이에 따라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식품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7.5%에서 올해는 3.8%로 쪼그라들었다. 박상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은 “농업예산 비중 추이를 보면 농업보조금이 계속해서 줄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그나마 남은 보조금마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몰아가는 언론 보도는 농업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상영·서륜 기자 supply@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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