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화 유예기간 2년여 남은 시점서 전격 결정 의무수입물량·생산량 급증…재고처리 한계 탓 유예 고집땐 DDA서 목소리 약화 우려도 한몫 가장 값싼 수입쌀·가장 비싼 일본산쌀 찾아내 최고 수준 관세상당치 설정…관세화 ‘성공적’
9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타카시마야 백화점 지하의 한 쌀 판매점에 일본 전역에서 생산된 쌀들이 지역별로 깔끔하게 진열돼 있다. 진열대 옆쪽으로는 생산지역이 표시된 지도가 붙어 있다.
1998년 12월21일. 일본은 ‘쌀 관세화 전환’을 전격 선언했다. 이날 일본은 관세화 전환 내용을 포함한 관세양허표 수정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다. 관세화 유예기간이 2년이나 남은 시점에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일본이 관세화로 돌아섰던 배경은 무엇이며, 현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관세화 전환 16년차를 맞은 일본 현지에서 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시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수입쌀=9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타카시마야 백화점의 쌀 판매점. 니가타현의 <우오누마 고시히카리>, 아키타현의 <아키타코마치> 등 일본 전역에서 생산된 쌀들이 지역별로 깔끔하게 진열돼 있다. 진열대 옆에는 생산지역이 표시된 지도까지 붙어 있다. ‘과연 수입쌀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품종과 가격대의 국산쌀이 판매되고 있다. ‘수입쌀도 판매하느냐’는 질문에 점원은 매장 한쪽 구석에 진열된 300g짜리 태국산 향미(Jasmine Rice)를 가리켰다. 점장인 이시바시씨는 “대부분 외국인이나 태국식 볶음밥 요리를 해 보려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찾는 수준”이라며 “가격도 300g에 411엔(약 4170원)으로 일본쌀에 비해 몇 배는 더 비싸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도쿄에서 거의 유일한 수입쌀 취급 매장이다. 추가로 수입쌀을 판매하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더 이상 찾기는 어려웠다. 가토 일본 전국농협중앙회(JA전중) 홍보부 과장은 “현재 시장에 풀리는 수입쌀은 물량이 미미해 소비자가 직접 느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며 “이따금씩 일부 매장에서 짧은 기간 동안 판매되기도 하지만 가격 이점이 없어 큰 인기는 없다”고 현재 분위기를 설명했다.
◆‘조기 관세화’ 결단 배경은=일본 역시 우리처럼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 당시 쌀에 대해 관세화 유예를 확보했다. 기간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로 6년. 대신 그 기간 동안 의무수입물량(MMA)을 매년 8만5000t가량씩 증량한다는 조건이었다. 그 결과 1995년에는 현미 기준 42만6000t의 쌀이 수입됐고, 1998년에는 68만1000t까지 물량이 확대됐다. 그 무렵 일본은 불어나는 MMA 물량에 더해 1994년부터 계속된 풍작으로 국내 쌀 생산이 급격히 늘면서 쌀 재고 처리가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다. 이에 관세화를 조기에 실시해서라도 MMA 물량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UR 협상 내용에는 ‘2000년 이전에 관세화로 전환할 시 연간 MMA 물량 증가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한국·필리핀 등 극소수의 국가만이 적용받는 특별조치를 계속 고집할 경우 향후 도하개발아젠다(DDA)에서 일본의 입장이 약화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히라사와 농림중금총합연구소 연구위원은 “MMA 물량은 결국 정부의 책임 하에 시장에서 적절히 격리되는데 물량이 늘어날수록 관리 비용도 크게 늘어난다”면서 “당시 정부는 차라리 조기에 관세화해 MMA 물량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세율, 어떻게 설정했나=일본이 1998년 당시 쌀 관세화를 결정하는 데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JA전중의 3자 합의가 뒷받침됐다. 와타나베 일본 농림수산성 과장보좌는 “3자는 당시 여러번의 논의과정을 거쳐 ‘1999년 4월1일부터 쌀시장을 개방하되, 1㎏당 1999년은 351.17엔, 2000년 이후 341.00엔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중 핵심은 단연 관세 부과액, 즉 관세율의 수준이었다. 관세율이야말로 관세화 전환의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전에 이미 가능한 최고 수준의 관세상당치(TE) 설정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TE는 UR 협정문에 따라 기준기간(1986~1988년)의 국제가격(수입가격)과 국내가격(대표적인 도매가격)의 차이로 계산된다. 일본의 TE 산정 근거를 보면, 국제가격으로는 기준연도에 가공용으로 수입실적이 있던 태국산 인디카계 쇄미의 수입가격(1㎏당 32엔)을 사용했다. WTO 협정상 쌀에 대한 분류가 백미·현미·쇄미 등의 구분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값싼 쇄미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국내가격은 국내산 상급미 도매가격(1㎏당 434엔)을 사용했다. 상급미가 이 기간 소비량의 64%를 차지했다는 이유였다. 이를 토대로 두 가격의 차이인 1㎏당 402엔이 기준 관세상당치로 산출됐다. 이를 종가세로 환산하면 무려 1256%에 달한다. 가장 싼 수입쌀 가격과 가장 비싼 국내산 쌀 가격을 찾아내 적용함으로써 관세율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다. 여기에 농업협정에서 정한 감축률인 15%를 적용해 최종 관세상당치(1㎏당 341엔)를 확정했다.
당시 호주·아르헨티나·유럽연합(EU)·우루과이 등 4개국이 TE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일본의 끈질긴 협상과 설득으로 끝내 관세양허표(C/S) 수정안은 그대로 유지됐다. 당시 일본의 MMA 물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미국은 별다른 이의제기는 하지 않았다. 통상전문가들은 이런 미국의 암묵적인 용인이 일본의 고율관세 설정에 큰 힘을 보탰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사전에 이면합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일본의 MMA 물량은 수입국가가 따로 정해지지 않은 총량쿼터 방식이지만, 매년 절반 정도는 미국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