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값 20개월만에 17만원대 무너져… 재고많고 소비부진 추석까지 빨라져 수확기가 더 걱정…시장격리 등 서둘러야
산지 쌀값이 뚝뚝 떨어지면서 20개월 만에 17만원대(80㎏ 기준)가 무너졌다. 여름철 쌀값이 전년도 수확기보다 높은 단경기 특수는커녕 벌써부터 올해 수확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평균 산지 쌀값은 80㎏들이 한가마에 16만9917원으로 4월의 17만1064원에 견줘 1147원(0.7%), 수확기인 2013년 10~12월의 17만5279원에 비해서는 5362원(3.1%) 떨어졌다. 산지 쌀값이 16만원대로 주저앉은 것은 2012년 9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지난해 생산량 증가로 미곡종합처리장(RPC)·농협 등 산지유통업체들이 적정 수준을 넘는 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월 말 기준 산지농협의 재고량은 62만6000t으로 1년 전보다 4만9000t(9.5%)이나 많다. 5월까지 쌀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7.1%가량 줄었다. 여기에 올해 시중에 풀릴 밥쌀용 수입쌀만도 12만t에 달한다. 밥쌀용 수입쌀 낙찰가는 20㎏들이 한포대에 2만5000원(중국산 1등급 기준)으로 국내산 상품(上品) 도매가격 4만3000원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농협은 이런 추세라면 햅쌀이 쏟아져 나오는 10월에도 2013년산 재고가 상당량 남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재고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밀어내기식 출혈 경쟁을 자제하도록 지도활동을 펼치고 있다”면서도 “올해는 양곡 소비가 햅쌀로 바뀌는 추석이 지난해보다 열흘 이상 빨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단경기 쌀값과 재고량이 수확기 가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2010년 쌀 생산량은 2009년보다 62만1000t이나 줄었지만, 그해 수확기 가격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9년 재고가 2010년 수확기에도 마구 쏟아져 나온 탓이다. 양곡업계 관계자는 “수확기까지 재고를 털어내지 못한 산지유통업체는 햇벼 매입을 줄이는 게 일반적인 추세”라며 “올해도 2010년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쌀 관세화 결정을 전후해 농가들의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수확기 투매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 2003년 쌀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한 대만이 이런 경험을 했다. 값싼 외국쌀의 대거 수입을 우려한 농가는 물론 산지유통업체마저 투매에 나서면서 2002년산 가격이 폭락했다.
김동현 농협RPC운영 전국협의회장(충남 서산 운산농협 조합장)은 “지금 추세라면 올 수확기 쌀값 전망은 비관적”이라며 “정부가 시중 재고 쌀 일부를 격리하는 등 선제적인 수확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