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 24절기 중 여덟번째 절기인 ‘소만(小滿)’이었다.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 소만은 보리가 누런빛을 띠고, 모내기가 시작되는 등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만은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풍요의 기억이 아니라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보릿고개’, 굶주림과 배고픔의 시기였다. 불과 한세대 만에 보릿고개는 추억이 되고 너무 많이 먹어 탈이 나는 과잉의 시대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식량주권은 여전히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식량위기 국제포럼’에서 확인된 우리 식량주권의 현주소는 망종 무렵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보리 까끄라기 마르기를 기다리던 때보다 더 나빠졌다. 곡물자급률은 지난 1970년 80.5%에서 지난해 26.7%로 떨어지고,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은 겨우 3.7%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체 곡물 수요량 2,062만t 가운데 4분의 3인 1,571만t을 남의 나라에서 사 와야 했다.
이러다 보니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가운데 거의 꼴지다. 미국(129%)과 프랑스(191%)와 독일(116%) 모두 먹고 남는 자급률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와 여러 조건이 비슷한 영국도 100%에 달한다. 잘산다고 선진국이 아니라 식량주권이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세계 곡물 생산량은 지난 2007년 무렵 천장을 찍었다. 2050년 91억명에 달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곡물 생산량을 현재의 21억t에서 30억t으로 늘려야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와 물 부족 등으로 곡물 증산은 한계점에 다다랐다. 그래서 인류가 앞으로 직면할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기아, 즉 보릿고개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지난 1950년대 232건에서 2000년 이후 5년 동안만 2,135건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미국 콘벨트를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호주 등 곡창지대는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인류의 ‘빵 바구니’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올 1·4분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곡물가격지수는 255로 국제 곡물파동을 겪었던 지난 2008년 238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필두로 한·미 FTA와 한·중 FTA 등 우리 식량주권에 직격탄을 안길 메가톤급 태풍은 코앞에 닥치고 있다. 환경부마저 향후 온난화로 인한 우리나라 농업 피해액이 2100년까지 연평균 7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울리자 양정당국은 대응방안으로 해외로부터 안정적인 곡물 수급망 구축과 국가비축제도 확대를 들고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식량의 자주적 공급률(자주율) 제고방안은 될지 몰라도 식량주권 확보방안은 아니다. 스위스는 알프스 산악조건에도 불구하고 2005년 기준 곡물자급률이 206%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가 주요 기관 및 시설의 녹지는 언제든지 농지로 전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식량주권을 가진 주권국가의 모습이다.
앞에서는 남아도는 쌀을 이유로 감산정책을 밀어붙이고 뒤로는 2010년산 신곡이 바닥나 정부청사 구내식당에서 2009년산 구곡 밥을 먹는다고 소동을 벌이는 양정당국에 식량주권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의 우리 민족이 보릿고개를 잊고 산 지는 겨우 반세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남의 나라로부터 사들인 식량에 의지해서 말이다. 그래서 더욱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식량주권의 현주소를 모두가 되돌아본 소만이 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