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를 보전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친환경농업’은 끝없는 시장개방 시대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친환경농업 원년으로 선포해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시작한 1998년 이후 16년간 친환경농업은 100배 이상의 양적인 확장을 거듭해 왔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져 나오는 농약파문도 친환경농업의 성장을 막지 못했다. 정부가 만든 인증체계와 감독 능력을 믿는 소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KBS의 보도(2014년 7월31일·8월7일)에 의해 친환경농업의 어두운 그늘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정직하고 우직한 농업인의 그늘에 숨어 부당한 이익을 탐하는 농업인과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고 조직적 부정의 주범이 된 인증기관, 숫자적 목표만 지향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자체에 주무관청의 관리·감독 실패가 더해져 일상화된 총체적 부실과 부정은 충격 이상이었다.
만약 그 방송내용 중 단 한가지라도 사실과 다른 것이 있다면 KBS를 허위사실 보도에 의한 명예훼손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책임을 물어 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올 것이 왔다고.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친환경농업을 위해 필요한 진통이라는 것을. 친환경농업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의 눈에도 어려워 보인다. 작물보다 더 생명력이 강한 잡초와 투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병충해로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고 싶은 마음, 눈 질끈 감으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끝없이 갈등해야 한다.
그러기에 친환경농업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과 신념에 바탕을 두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농산물은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이 양적으로 확장되는 만큼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의심과 부정적 시각도 커져갔다. 신뢰하기 어려운 무늬만 친환경인 농산물을 비싼 값에 사고 싶은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부정한 사람들이 사이비 친환경농산물로 친환경직불금, 지자체 보조금과 포상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동안 진실한 농업인들만 바보처럼 고군분투하는 친환경농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환골탈태해 친환경농업의 진정한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그 길만이 한국농업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업이 살 길은 규모화나 전문화를 통한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국민과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실적과 예산을 둘러싼 숫자놀음을 그만두고 차근차근 계단을 쌓아 올려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철학으로 시작된 친환경농업의 본질을 살려야 한다.
우선 인증체계를 수술해서 소비자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인증기관의 옥석을 가려 도려내고, 정직한 인증기관이 법을 위반하지 않아도 운영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이 정부의 보조가 아니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 전문 거래소를 설립하고 친환경농산물을 엄격하게 걸러내는 검사시스템도 정립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친환경농업의 철학과 중요성을 이해하는 양식 있는 소비자가 정직하게 생산해 농업의 품격을 지키는 농업인들의 손을 잡을 때 진정한 친환경농업이 가능해진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