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병법(兵法)을 알지 못하니 이같이 하면 반드시 패전(敗戰)할 것이오." 이순신이 작전회의에서 원균에게 일갈(一喝)한 말이 징비록에 전한다. 견내량이 물이 얕고 바다가 좁아서 배를 돌리기 어려우니 거짓으로 물러나는 척 적병(敵兵)을 유인하여 넓은 바다로 나가서 싸우자는 것이 이순신의 작전이었다. 이에 대해 원균이 당장 나가서 맞닥뜨려 싸우자고 주장하자 이순신이 한 말이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의 연전연승(連戰連勝)의 서막을 장식한 옥포대첩(1592년 5월)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쟁과 병법의 관계는 정치와 정책의 관계와 같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병법을 모르면 용기는 돈키호테의 만용에 지나지 않는다. 충무공의 23전 23승 신화는 신출귀몰한 병법으로 완성된 것이다.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水軍)을 괴멸시키고 전사한 원균이 지탄받고 매도되는 이유는 용맹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병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고는 우리 사회를 뿌리째 흔들어버렸다. 슬픔과 애도의 물결 속에서 경제가 위축되고 정국이 경색됐다. 급기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 개조'를 눈물로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국가 개조는 국민의 뜻이었고,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였다.
공직 사회의 부실이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었기에 국가 개조는 곧 공직 사회의 혁신이었다. 하지만 그럴듯한 해결책은 아직 제시된 바 없다. 국민도 대통령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니까 정치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니까 정책은 없다.
적과 무조건 싸우는 것이 병법이 아니듯 공직 사회의 문제에 단선적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퇴직 관료의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강화하는 것은 엘리트 공무원의 경험과 경륜을 사장시키는 것이다. 공직 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민간 경력자 채용을 확대하는 것은 개방형 임용제도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재난 대비와 부처 간 칸막이 제거를 위한 컨트롤 타워 설치는 별 성과 없이 폐지된 내무부 재난관리국과 소방방재청을 상기시킨다. 공직자를 감사와 사법처리로 압박하는 것은 사기를 저하시키고 복지부동을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공하는 정책은 공무원이 특정 부처에 소속되어 순환 보직하는 제도를 버리고 부처 간의 벽을 넘어 유사·관련 직무들 사이에서 승진과 전보가 이루어지는 '직무군(群)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공무원이 부처에 소속되지 않으면 관피아가 없어지고, 직무군에 소속되면 전문성이 함양된다. 또 부처 간 관련 업무 담당자가 같은 직무군의 선·후임자이기 때문에 부처 간 칸막이가 있을 수 없고 컨트롤 타워도 필요 없어진다. 전문성을 갖추고 적재적소에 보임된 유능한 관료가 신나게 일하면 감사나 징계로 압박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 대비 '절반의 성공'에 그친 후발국이다. 성공한 후발국 경제는 시장과 정부의 합작품이다. 후발국의 성공에는 우수한 공직자의 올바른 정책이 있었다. '제2의 한강의 기적'도 엘리트 공무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루빨리 직무군 제도를 도입하여 선진국 도약의 '완전한 성공'을 앞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