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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의 한 영농조합법인 관계자들이 국산 쌀가루로 만든 마들렌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 부는 ‘글루텐 프리’ 열풍으로 쌀가루로 만든 빵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김병진 기자 | |
우리에게 식량 이상의 의미가 되는 쌀. 하지만 세상이 달라져 이젠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됐다. 쌀이 부족해 분식장려운동을 펼친 게 엊그제 같은데 불과 몇십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셈. 우리 입맛이 서구화된 게 주된 원인이다. 이 때문에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매해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한 사람이 소비한 쌀은 65.1㎏으로 쌀 소비량이 가장 많았던 1970년 136.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밀가루가 대신하고 있다. 자급률이 1.1%(2014년 기준)에 불과한 밀가루가 국민의 주식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밀가루를 대체할 쌀가루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이유다.
◆밀가루 대체=지난해 식용 밀 수입량은 225만6130t. 밀은 전량 밀가루로 소비되므로 밀 수입량은 밀가루 소비량으로 전량 환산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밀가루를 10% 정도만 쌀가루로 대체한다면 어떻게 될까. 연간 22만5000여t 정도의 밀가루 소비량이 줄어드는 대신 그만큼의 쌀 소비량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 같은 물량은 지난해 쌀 소비량의 7% 수준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쌀가루 제조용으로 공급된 정부 양곡 6만8000t에 견주면 세배 이상 많은 양이다. 정부 양곡은 정부가 쌀 소비촉진을 위해 한국쌀가공식품협회를 통해 공급한 쌀을 말한다. 결국 밀가루에 내준 시장을 되찾는 것이 쌀 소비 확대의 지름길인 셈이다.
◆완전식품, 최근엔 건강식으로 조명=그동안 밀가루를 원료로 한 빵과 패스트푸드 선호현상은 곧 비만이나 성인병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쌀은 우리 체질에 가장 잘 맞을 뿐 아니라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다. 탄수화물이 주성분이지만 단백질·필수지방산·비타민·식이섬유·미네랄 등 10여가지 영양성분이 포함된, 단일식품으로는 ‘완전식품’이라고 식품영양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더욱이 쌀은 다른 곡류에 비해 성장발육 촉진과 두뇌발달에 좋은 필수아미노산인 라이신 함량이 100g당 2.3g인 밀보다 높은 3.8g으로 양질의 단백질 함유를 자랑한다. 지방 역시 불포화지방산으로 구성돼 성인병 위험이 낮고 비타민 B복합체와 다양한 무기질은 물론 음식물의 장내 통과시간을 단축시켜 비만 예방에 효과적인 식이섬유도 포함돼 있다.
최근엔 글루텐 프리(free)의 대명사로 떠오르며 건강식이나 다이어트 제품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글루텐은 밀이나 보리에 들어있는 식물성 단백질의 혼합물로, 밀가루 반죽을 쫄깃하게 하고 빵을 폭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일부 사람에게 알레르기 반응이나 소화장애 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글루텐 프리 식품은 글루텐에 민감한 소비자뿐 아니라 웰빙을 추구하는 소비자로까지 요구가 확대되는 추세로, 세계 시장은 2016년 265억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듯 쌀가루가 밀가루를 대신할 수 있다면 남아도는 쌀의 소비를 촉진할 수 있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등 다양한 효과가 기대된다. 잘만 하면 쌀 산업의 경쟁력을 한단계 높일 토양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쌀막걸리처럼 현재는 밀가루가 지배하는 연간 1조원 규모의 떡볶이 시장 또한 쌀가루가 휘어잡을 수도 있다.
◆쌀가루용 쌀 공급가격 안정화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가장 큰 약점은 가격이다. 정부 양곡용 쌀가루는 밀가루보다 다소 비싸다. 쌀가루는 제분 방식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1㎏당 900~1000원대에 거래된다. 반면 밀가루 가격은 1㎏당 700~800원대다. 그렇다 보니 정부 양곡용이 아니면 가격경쟁력은 아예 없는 셈이다. 정부가 최근 밀 시장 대체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밀가루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시적 할인공급을 추진하는 계획을 마련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정부는 현재 일반가공용은 1㎏당 546원, 쌀가루용은 342원으로 공급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는 “쌀가루와 밀가루는 대체관계”라면서 “정부가 쌀가루 시장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쌀 공급가격을 안정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쌀에 대한 기초 연구도 고민거리다. 서양인의 주식이었던 빵이 전 세계인의 음식으로 보급된 것은 일찍이 유럽의 과학자들이 밀의 품종에 따른 가공 적성과 밀가루의 제빵 특성에 대해 수없이 많은 연구를 해온 결과다. 하지만 쌀은 제분 등 관련 기술이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다.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쌀의 영양생리기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우리 쌀의 가공 적성과 제품의 품질 특성을 측정하는 기계장치, 연구방법 등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지난 1세기 동안 밀에 대해 연구했던 것처럼 체계적으로 쌀과 쌀가루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밀가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입맛을 쌀가루로 되돌리려는 정부와 관련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신말식 전남대 교수는 “언론 등을 통해 밀가루 제품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쌀가루 레시피(요리방법)를 소개해 어린 자녀를 둔 엄마가 홈베이킹을 하도록 하든지 쌀가루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각종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질의 쌀가루 유통체계 구축과 함께 가공식품에 알맞은 쌀 품종 개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태억 기자 eok1128@nong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