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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는 정치·사회적으로는 ‘총체적 불안’, 경제적으로는 ‘장기불황’으로 특징지어지는 암울한
시대를 맞고 있다. 국제사회는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최근의 파리 테러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유례없는 공포와 위협 아래 놓여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새로운 일상(new
normal·뉴 노멀)’이 시작됐다는 비관적 진단이 일반화되면서 저성장이 초래할 우울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다.
지난 세기 유리한 대외환경 아래서 수출주도전략을 활용해 고도성장을 달성했던 우리 경제는 국내외 여건변화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급속한 하락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진 채 자칫 제로성장을 우려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농정의 영역에서도 1930년대 이후 거의 1세기 만에
도래한 ‘조용한 대공황’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어려운 시대상황 아래 경쟁력 강화 위주의 정책 추진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갖가지 부작용들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들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먼저 농촌사회 안정을 위한
협력시스템의 구축이다. 경쟁과 협력은 사회를 지탱하는 두개의 기둥일 뿐 상호배타적 관계는 아니어서 협력의 질서가 무너지면 경쟁시스템도 살아남지
못한다. 경쟁이 기업 등 이익사회의 덕목이라면 협력은 가족 및 지역공동체의 기본원리다. 지금은 그동안 신자유주의 농정의 우승열패 논리 아래서
크게 훼손된 지역공동체 기능 회복을 통해 농촌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둘째로 최근 다양한
민간주체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에 힘입어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로컬푸드운동이 소수의 독과점 곡물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푸드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낮추는 수준까지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가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로컬푸드운동은 생산자·소비자·시민사회·지역공동체 등이
주도하는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만, 이를 간접 지원하기 위한 교육·홍보 등 영역에서의 중앙정부의 역할 또한 중요한
일이다.
셋째, 쌀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에서 공급과잉으로 인한 경영불안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정의 지평을 미국의
푸드스탬프제도같이 저소득층 복지증진과 내수시장 확대를 연계한 시책으로 확대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정수단을 통해 국내산
농산물과 국민 식생활을 직접 연계시키는 정책은 매우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지니며 농업정책과 복지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재화·서비스 생산 주체로서 영리부문(기업)과 공공부문(정부) 이외에 사회적경제부문의 중요성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과 강제력을 지닌 정부 등 양대 주체에 의존하는 경제운영에만 익숙해져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전체 경제활동의 약 8%를 영리기업도 정부도 아닌 사회적경제부문이 담당하고 있다. 또 그 역할은 근래에 한층 확대되고 있다. 우리 농촌지역에서도
주민 생활환경 개선이나 복지서비스 전달 등 영역에 기여할 수 있는 비영리조직(NPO)의 기능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유럽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물적 시설투자보다 사람, 특히 청년과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이 중시되고 있다. 우리 농정이 저성장시대 성장잠재력의 귀중한 원천인 인적자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시설투자 중심의 정책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청년가족농 정착과 지역리더로의 성장, 청년창업 지원을 위한 투자를 최우선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영일(농정연구센터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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