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신문>은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을 도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아!
그렇구나’ 코너를 신설합니다. 농업·농촌의 참모습은 물론 농업을 둘러싼 주요 현안, 국내외 식품안전 정보 등 소비자가 알아두면 유익한 내용을
1개 면씩 게재합니다. 객관적인 통계지표를 활용한 기사와 사진·그래픽 중심의 지면 구성은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것입
니다.
어느 산업의 사회적 중요도를 따질 때 흔히 사용하는 게 산출물의 화폐적 가치입니다. 2013년 농업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였습니다. 일반 국민이 인식하는 농업의 중요도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렇지만 농업의 진정한
가치는 이런 외형적 화폐가치에 가려 있습니다. 공기처럼 중요하면서도 다른 산업이 대신할 수 없는 공익적 기능입니다. 농업의 숨겨진 가치를
알아봅니다.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과 강남역 일대는 폭우가 내릴 때마다 물바다로 변합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빗물을 제대로 흡수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농촌에서는 곳곳에 설치된 작은 댐이 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예방합니다. 바로 논입니다. 논은 빗물을
저장하고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거대한 댐입니다. 논 1㏊(3000평)가 한번에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은 2400t 정도입니다.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0.28t)의 8571배입니다. 이를 다시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 90만8000㏊로 계산하면 21억8000만t이 됩니다.
서울시민의 식수원인 팔당댐 저수용량 2억4400만t보다 9배나 많은 양입니다. 밭도 5억t가량의 물을 저장해 홍수를 조절하는 데 일조합니다. 논과 밭이 없다면 비가 내릴 때마다 홍수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겠죠. 논과 밭은 빗물을 받아 지하수로 보냅니다. 지하수는 인간에게
식수를 제공하거나 하천의 유량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양이 연간 60억t으로 전국 수돗물 사용량 62억t에
버금갑니다.
경사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논과 밭은 토양유실을 줄이는 데도 기여합니다. 암석이 풍화해 1㎝ 깊이의 흙이 되기까지
200년이 소요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0.4㎝ 두께의 흙이 유실됩니다. 토양이 유실되면 함께 있던 유기물까지 사라져 땅이 척박해지고,
유기물은 하천을 오염시킵니다. 논은 밭에서 흘러내리는 흙을 받는 역할을 합니다. 1년에 유실되는 흙은 1억8000만t에 달합니다. 5t 트럭으로
환산하면 3600만대분입니다.
농업은 천연 정화조입니다. 물이 농경지에 머무르는 사이 각종 영양분이 농작물에 흡수되거나
토양미생물에 의해 분해됩니다. 이런 식으로 정화되는 오염물질이 연간 7억t이나 됩니다. 농작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인체에 해로운 탄산가스를
연간 2160만t 흡수하고, 유익한 산소를 1560만t 방출합니다. 음식물 찌꺼기와 가축분뇨를 퇴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연간 2000만t가량의
쓰레기도 처리합니다.
농업은 농촌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입니다. 지나치게 빠른 도시화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죠. 농업은 농촌경관과 전통문화를 유지하고 계승·발전시키는 기능도 있습니다. 도시민에게는 정서적 만족감과 포근한 휴양처를 제공합니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기능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유럽은 경관과 전통을 유지하는 데 농업예산의 절반을 쏟아붓습니다.
이처럼 농업은
농산물 생산과 공급이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편익을 창출해 국민경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거래되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농업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국제적인 노력이 활발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농업의 공공재적 기능이 거래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비교역적 기능(Non-Trade Concerns)’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공업과는 달리
식량안보·고용유지·환경보전·지역균형개발과 같은 특수성이 있으므로 농산물 무역협상에서 이 점을 감안하자는 의미입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이를 농업의 ‘다원적 기능’으로 부릅니다. 또 ▲식량안보 ▲환경보전 ▲사회문화적 기능 ▲식품안전 ▲경제 기능 등 5가지로 세분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1998년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회원국들이 확보해야 할 공동목표라고
선언했습니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한번 상실하면 회복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영구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농업이 국가경제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거나 ‘식량은 외국에서 사다 먹는 게 경제적이다’란 말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편견입니다. 농업이 위축되면 그 뒤에 숨겨진 다원적 가치도 사라진다는 점을 국민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
●돈으로 환산해본다면…206조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그 가치를 평가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농업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려는 목적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2014년 기준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평가한 결과
125조7860억원으로 분석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00년 기준 평가액 49조9510억원보다 2.5배 늘어난
수치입니다.
2004년 농촌진흥청은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82조4995억원으로 평가했습니다. 산림의 가치는 산림과학원의 2000년
기준 평가액(49조9510억원)을 차용했습니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가 산림 가치만큼 늘었다고 보면 206조원이란 계산이
나옵니다.
소비자들도 이런 가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3년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유지를 위해
국민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을 추산했더니 최대 9조3272억원으로 분석됐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식량안보가 2조3090억원으로 가장
컸습니다. 2008~2010년 국제 곡물가격 폭등으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된 영향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