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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WTO협정 위반’이라는 가능성 - 농민신문
[ 2016-09-19 14:35:10 ]
글쓴이  
관리자
조회수: 10046        
링크 #1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267895&subMenu=dsearch&key= , Hit: 9859


[생각의 숲-노주희]‘WTO협정 위반’이라는 가능성


‘WTO 위반 가능성’ 무릅쓰고 정부, 조선업 지원 결정 같은 태도 농업에도 적용해야
학교급식 우리농산물 우선 사용 밥쌀용 쌀 수입 금지 시행을

 “안 된다.” “왜 안 되는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어서 안 된다.”


 1995년 WTO 협정이 발효되고 본격적인 개방농정이 시작된 이래 정부와 농민 사이에 이런 대화가 반복되고 있다. 학교급식에 지역에서 생산된 우수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한 전북도 의회의 조례가 이렇게 사라졌다. 식량 안보를 위해 국가가 기초농산물을 수매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농민단체의 주장도 ‘WTO 위반 가능성’이라는 한마디로 묵살됐다. WTO 보조금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시행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도 나왔지만, 이미 결론부터 내린 정부에게는 소용없었다.


 2015년 정부는 쌀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쌀시장을 개방하면 WTO 농업협정에 따라 그동안 의무적으로 수입했던 밥쌀용 쌀을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홍보했다. 농민들은 WTO 협정 때문에 밥쌀용 쌀을 강제로 수입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2015년 한해에만 6만t의 밥쌀용 쌀을 수입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2만5000t의 밥쌀용 쌀을 수입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WTO 협정에 밥쌀용 쌀을 수입할 의무는 없지만, 수입하지 않으면 WTO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를 댔다.


 그러나 정부에게 ‘WTO 위반 가능성’이 모든 정책 결정의 금과옥조는 아니다. 정부는 최근 WTO 보조금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음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사실이 폭로되어 곤욕을 치렀다.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WTO 위반 가능성’까지도 무릅쓰겠다는 정부의 이러한 결정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농업을 대하는 태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정부의 이 모순된 태도를 대체 어찌 보아야 할까?


 명백하게 ‘WTO 위반 가능성’이 없는, 그래서 차마 ‘WTO 위반 가능성’을 이유로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농업정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더 모순적이다. 정부는 최근 개정된 WTO 정부조달협정에서 정부가 조달하는 학교급식에는 우리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리를 획득했다.


 그러나 정부는 애써 획득한 이 권리를 스스로 누리지 않겠다고 한다. 왜일까? 이번에는 다른 논리가 적용되었다. “WTO 위반은 아니지만, 다른 농산물 수출국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WTO 위반 가능성’은 단지 농민들의 입을 막으려는 수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WTO 협정은 국내법과 같은 지위를 지닌다. 정부가 WTO 협정을 위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우리 농업의 생존에 직결되는 정책에 막연히 WTO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옳지 않다. 사실 처음부터 명백하게 WTO 협정에 위반되는 정책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 설계하고 잘못 시행하면 그 구체적인 상황에서 WTO 협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이 존재할 뿐이다.


 정부의 역할은 그러한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집행하고, 이에 반발하는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꼭 필요하다면 WTO 협정 위반과 그에 따른 불이익까지 고려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조선업을 살리겠다며 ‘WTO 위반 가능성’을 무릅쓰고 기꺼이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했다. 같은 태도가 농업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학교급식에는 우리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헐값에 밥쌀용 쌀을 수입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그만해야 한다.



 노주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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