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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1회 식량안보세미나에서 행사를 마치고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이종호 기자 |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통념을 전면 부인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고추의 이용 역사’라는 주제로 제21회 식량안보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는 한식의 주재료인 고추가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지 4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일부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하는 자리였다.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박사(책임연구원)는 ‘고추 전래의 진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면서 식품과학과 생물학, 고문헌을 분석해 이같은 사실을 규명했다. 주제발표 후에는 6명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앉아 종합토론을 벌여 권 박사의 의견을 뒷받침했다.
“고추 일본 전래설, 근거 없는 가설에 불과”
[주제발표]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박사(고추 이용의 역사: 고추전래의 진실)
고추(Kochu, Chilli, 학명 Capsicum)는 가지과(Soana-ceae)의 일종으로 토마토(Lycopersicon)와 기원이 같다고 본다. 최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로 고추의 유전자 분석이 가능해 화석과 비교하면 고추가 지구상에 언제 나타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지구의 역사가 약 50억 년이라면 2500만 년 훨씬 이전에 지구상에 가지과가 분화됐고, 가지(Solanum)와 고추가 분화된 것은 1960만 년 전이다.
그리고 가지과에서 토마토(Lycopersicon)와 감자(Tub-erosum)가 분화된 것은 694만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고추는 지구상에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짧게는 100만 년, 길게는 400만 년)부터 있었고 전파와 진화가 이어졌다. 현재 어느 지역에서 처음 고추가 분화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유전자 분석을 통해 고추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됐는지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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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박사가 ‘고추 전래의 진실’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록은 가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현재 지구상에는 거의 수백 종의 고추가 재배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고추가 진화된 것은 적어도 수백만 년 전부터다.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등 모든 대륙에서 그들 고유의 다양한 품종의 고추가 재배되고 있다. 사람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인 1940만 년 전에 나타난 고추는 다른 대륙에도 전파됐다. 최근 ‘네이처’에 실린 논문(Tewksbury & Nabhan, 2001)에 따르면 새(Avian)가 고추를 먹고 멀리 날아가 배설한 물질, 즉 배설물에 있던 고추씨가 전파됐다고 한다.
진화가 먼저 일어나서 다양해졌을 것으로 논란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지만 한 장소에서 진화가 일어날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추가 다양한 종으로 진화한 것은 지구상에 나타난 지 1500만 년이 지나서, 즉 비교적 최근인 100~200만 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고추씨가 새에 의해 전파돼 새로운 기후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하게 진화됐다는 추정이다. 유전자 분석 결과 천만 년 이상 몇 개의 소수 품종을 유지하고 있다가 각 대륙에 퍼진 후 200만 년 전부터 급격히 다양한 품종으로 진화됐다고 볼 수 있다.
47만 년 전 한반도 고추 존재
유전자 분석으로 고추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고추로 대표되는 매콤 달콤한 고추(Capsicum annuum)와 중남미의 아히(aji)로 대표되는 매운 고추(Capsicum baccatum)가 분화된 것은 175만 년 전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 언제 고추가 들어 왔는지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계속 재배했던 고추 품종의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이미 47만 년 전 우리나라에 분화된 고유 품종으로 밝혀졌다. 즉 47만 년 전 이미 두 종류의 고추가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진화돼 두 품종으로 나눠졌는지 아니면 두 개의 매우 비슷한 다른 품종이 들어와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다만 수십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두 종의 고추가 있었음을 확인해준다. 유전자 분석 결과 두 고추가 매우 밀접한 것으로 봐서 다른 품종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가능성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다음 진화와 분화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고추가 적어도 50만 년 전보다 훨씬 이전인 수백만 년 전에 유입됐을 가설이 성립된다.
흔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고추를 유럽으로 가져갔다는 사실을 들어 1492년 이전 아시아에 고추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논법의 비약이 될 수 있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렇게 다양한 고추의 품종으로 진화하기까지는 적어도 수백만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추의 두 가지 품종이 매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50만 년 전에 분화된 것으로 볼 때 100~200년 내 아히가 우리 품종으로 진화될 수 없다.
따라서 중남미 고추, 특히 아히를 1492년에 콜럼버스가 유럽에 갖고 들어가 인도와 일본을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로 들어와 우리 고추가 됐다는 주장은 생물학적으로 전혀 성립될 수 없다.
더욱이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록은 단 하나도 없다. 문헌학적으로도 임진왜란 이전의 수많은 문헌에서 고추(椒)와 김치(菹), 고추장(椒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은 많다. 유전학적으로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진화되고 우리 고추가 되려면 수백만 년이 걸린다. 농경학적으로도 고추가 임진왜란 때 들어와 우리나라 전국에서 재배되려면 수백 년이 걸리며, 식품학적으로는 우리 고추 품종에서 고추장과 김치를 동시에 발견해 전국으로 다 알려진 대표식품으로 발전하려면 수천 년이 걸린다. 생물학적으로 결론을 내리면 우리나라에는 고추가 길게는 몇 백만 년 전부터 짧게는 몇 십만 년 전부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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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품 관련 전문가 6명이 참가한 종합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종합토론] 일본전래설, 우리 식문화 관심 부족에서 비롯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고 식품 관련 전문가 6명이 참가한 종합토론은 권 박사의 주장에 수긍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김정상 경북대 교수는 “이성우 교수 등 임진왜란을 통해 고추가 들어왔다는 여러 주장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살을 덧붙였을 뿐 이렇다 할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고 유전적으로도 일본 전래설을 증명하기 힘들다”며 “앞으로 식량 주권과 안보 차원에서 고추 전래과정을 잘 이해하고 정립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영 용인대 교수는 “김치와 고추장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소스로 알려진 상황에서 권 박사의 고추 전래설 반박은 우리가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라며 “지질학적으로 고추가 어디에 분포했는지 규명하는 문제도 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흥미로운 주제”라고 전했다.
노봉수 서울여대 교수는 “고추의 품종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식품에 활용됐으나 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일본 전래설이 기정사실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우리 식문화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상태에서 상당 기간 동안 연구에 매진한 권 박사에게 박수를 보내며 생물학적 접근을 통한 보고와 함께 올바른 해석이 결실을 맺길 기원한다”고 호평했다.
류기형 공주대 교수는 “중남미산 아히 고추가 임진왜란 때 국내에 전래된 최초의 고추가 아님을 바로잡으려면 각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문가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며 우리나라와 같이 고추의 전래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중국과의 국제적 공조도 모색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은 “고추의 일본 전래설과 달리 일본 고문헌에서는 임진왜란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반대의 기록이 나오나 국내 학계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고추의 유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유럽, 중남미, 태국 등의 고추와 유전적으로 어느 쪽에 가까운지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도연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장은 “고추가 고려시대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재배됐고 순창고추장이 유명해진 시기가 고려 말이라는 주장이 학술적으로 밝혀진다면 순창고추장의 위상이 지금보다 더욱 커질 것”이라며 “관련 산업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주면서 산업경쟁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학술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우 기자 ksw@foodban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