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우리 정부의 쌀 정책은 ‘과잉물량의 시장격리’와 ‘감산을 위한 생산조정’이라는 두가지 시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2016년 6월 산지 쌀값이 80㎏ 한가마당 12만6000원대로 급락하자 정부는 37만t을 사들였다. 이에 올 3월 쌀값이 17만356원으로 9개월 만에 34.3%나 오르는 비상식적인 널뛰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고자 2018년과 2019년 각각 5만㏊씩 모두 10만㏊의 논을 밭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신청기간을 연장하고 추가 지원책을 제시했음에도 올해 농가의 생산조정 신청면적은 17일 기준 3만8000㏊로 계획면적의 76%에 그쳐 첫해부터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시장격리와 생산조정제가 의도한 목표를 달성할 경우 쌀 수급안정 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일본의 최근 경험을 보더라도 정부 주도의 물량통제 정책만으로 개방경제 아래서 쌀 수급안정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에서 쌀 수출국들로부터 ‘지저분한 관세화(Dirty Tariffication)’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엄청나게 높은 관세장벽을 설정했다. 하지만 2017년 일본의 식용쌀 의무수입물량(10만t)은 정부 입찰에서 처음으로 전량 소진돼 대형슈퍼·외식업체 등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일본이 식용쌀을 수입하는 배경에는 자국산 쌀값 상승이 있다. 호주산 식용쌀 가격이 일본산 최저가보다 20%나 낮다.
일본 쌀값이 상승한 데는 지난 50년간 계속된 재배면적 감축과 사료용 쌀 증산의 영향이 크다. 일본은 장기간의 생산조정 정책으로 쌀 재배면적을 1970년 344만㏊에서 최근 240만㏊ 수준으로 100만㏊ 이상 줄였다. 근 5년 사이에 쌀 생산량은 11%나 줄어 올해 소매가격이 전년 대비 10% 정도 올랐다. 사료용 쌀 재배 장려시책으로 사료용 쌀 수확량이 전체 쌀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하게 된 것도 국내산 쌀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 3월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일본 쌀시장의 추가 개방은 불가피해졌다. 미국이 재가입한다면, 그 파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쌀 생산조정과 사료용 쌀 재배 장려 등은 우리쌀 정책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앞으로 한국이 TPP에 참여한다면, 쌀 수급과 관련해 부정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쉽게 예견되는 일이다.
전면적인 시장개방 체제 아래서 지속가능한 쌀 정책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과 같은 정부 주도의 물량통제 정책은 방대한 정부 재정 낭비와 쌀값 상승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다. 시장의 기능을 살려 농가의 자발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합리적인 작목 선정이 이뤄지도록 하고, 정부는 시장실패를 완화하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농가의 소득확보는 득보다 실이 큰 가격지지방식이 아닌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한 직불제 도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직불제는 현재처럼 쌀이라는 특정작목의 가격지지를 위한 시책이 아니라 농업구조 개선과 환경보전을 위한 보편적 정책 수단으로 전면 개편돼야 한다.
요컨대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이 1990년대부터 채택하고 있는 농가 경영안정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양립하는 현대적 농정시스템으로 한국농정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쌀 산업은 물론 전면 개방시대의 우리 농업을 살릴 길이 없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