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칫국물을 상품화한 일본처럼 김치 속 등 다양한 상품 개발해야
우리나라는 김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김치 생산량이나 해외 수출량 등 그 실상을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자꾸 밀리는 형국이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종주국의 위치도 위태로울 지경이다. 김치 제조를 과학화해 가격경쟁력을 키우는 게 하나의 대책일 수 있지만, 생각의 범위를 넓혀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도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다.
발효를 시키는 우리 김치는 발효과정에서 다양한 유기산과 독특한 발효 향미를 갖는 여러가지 성분들이 생성되고, 이것들이 조화를 이뤄 특이한 맛을 제공한다. 반면 일본 ‘기무치’는 발효를 시키지 않고 신맛을 내는 식초산과 젖산 농도를 적절히 맞춰 여러가지 재료와 함께 혼합해 만든다. 발효를 시키지 않다보니 단순한 신맛만 있을 뿐 풍부한 맛과 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그런 맛에 익숙해져온 일본 사람들은 신김치를 먹는 것보다 알맞은 신맛을 느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기무치’가 진정한 김치라고 여기는 듯하다. 우리는 먹어보고 “이것은 김치가 아니지”라고 말하지만, 일본은 ‘기무치’를 마치 한국의 김치인 듯 선전하면서 국제시장에 상품을 내놓는다. 그들의 전략은 ‘기무치’가 김치의 원조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우리 김치는 알맞게 익은 시점이 지나면 이내 신맛이 강해져 먹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한다는 점에 착안한 그들의 전략이 낫다고도 볼 수 있다. 제때 판매되거나 고객이 사 가서 적당한 시점에 먹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품질이 변할 수 있고, 이는 우수한 품질의 김치라는 인식을 바꾸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나마 최근 김치의 포장단위가 작아져 오랫동안 두고두고 먹는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발효과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김치의 맛을 일정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김칫국물 시장이 크게 성장한 적이 있다. 한국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김칫국물을 상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누구든지 쉽게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신제품이었다. 우리나라의 어느 회사도 그런 제품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열무김치 국물도 독특한 탄산의 신맛 성분이 갖는 특성 때문에 어느 탄산음료보다 훨씬 시원하다. 열무김치 국물맛은 청량감이 돌면서 유기산의 맛을 갖고 있고, 발효과정 중 생성되는 독특한 발효 향미까지 더해져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국내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외국인 연사들과 함께 한식으로 식사한 적이 있는데, 당시 외국인 연사들은 하나같이 김칫국물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만큼 경쟁력이 충분한 상품이라는 말이다.
김치를 수출하는데 김치의 속만 만들어 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장에서 배추만 사다가 섞어서 먹을 수 있는 또 다른 김치형태의 제품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김치의 속을 다른 원료와 혼합해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제품으로 재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김치를 단순히 김치 자체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김치 상품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김치라는 제품의 특성을 살려서 새롭게 변화를 주고, 김치 종주국의 명성에 걸맞은 다양한 김치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