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구 농정부장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좁은 의미로 내 배가 불러야 남도 도울 수 있다, 혹은 내 형편이 좋아야 남도 챙겨줄 수 있다는 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넓은 의미로는 나라의 창고에 식량이 가득하면 우리 국민들의 민심도 넉넉해진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나라의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 자칫 민심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상이변으로 풍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스러운 전망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그런차에 정부가 흉년과 풍년 등 여러가지 상황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식량안보를 확고하게 다지기 위한 대책을 기대하면서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정부는 ‘수확기 쌀 수급안정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를 튼튼하게 다지는 기틀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농지 문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2004년 이후 행복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각종 택지개발, 산업단지 조성 등을 위해 1만㏊ 이상의 농지가 사라졌다. 이 가운데 우량농지라 할 수 있는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도 상당수 ‘개발’이란 명목으로 사라졌다. 현재 추세라면 벼 재배면적이 80만㏊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농지가 확보되지 않은 식량안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논 소득기반 다양화사업’이란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쌀 감산정책의 재검토도 필요하다. 쌀 감산정책은 2009년까지 계속된 풍작으로 재고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고심 끝에 나온 정책이지만 상황이 급변한 만큼 재검토가 절실하다. 특히 논에 다년생 작물을 재배하더라도 보조금을 지급키로 한 것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또 논에 벼 외의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더라도 논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경우 곧바로 논으로 전환해 벼를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안보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는 것이다. 농업계 외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없으면 사다 먹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계 각국은 점차적으로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남의 사정을 고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으며, 식량은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귀한 몸’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외면한다면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큰 것이다.
최근의 기상이변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자연의 위대함은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 첫번째 교훈이다. 인간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우량농지를 훼손해 아파트와 공장을 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산업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식량부족이란 아찔한 사태가 올 수도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이다. 농업은 식량을 생산하는 기능 외에 수자원 함양, 국민정서 순화, 환경보존, 대기 정화, 생태계 유지, 토양 유실 및 홍수 방지, 인간과 동물의 서식처 제공 등 경제적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엄청난 기능을 하고 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식량안보에 대한 중요성이 정부가 마련하는 대책에 충분히 반영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ninebell@nong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