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지 않아도 도태시키는’ 일이 축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감염 동물에 대한 살처분이 바로 그것이다.
2000년 이래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목적으로 살처분한 동물만 1억마리 정도에 이른다.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공장식 축산으로 불리는 열악한 국내 축산환경과 살처분 보상금을 타려는 일부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 위험도 평가가 실종된 ‘탁상행정 살처분’ 때문이다.
2017년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된 H5N8 AI로 인한 발병농가의 살처분 마릿수를 놓고 단편적으로 비교하면 영국에서 74마리를 죽일 때 한국은 208만여마리를 살처분했다. 국내에서는 그해 H5N6와 H5N8 AI가 연달아 같이 터졌는데, H5N6 AI로 인한 발병농가의 살처분 마릿수를 비교하면 일본이 167만마리를 죽일 때 한국은 2455만여마리를 죽였다.
현행법상 고병원성 AI 발병 때 감염동물과 같은 농장에 있던 가금류는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살처분하도록 돼 있다. 한편 발병농가로부터 반경 500m 이내는 관리지역, 반경 3㎞ 이내는 보호지역이라 해서 그 지역 내 가축은 위험도 평가에 따라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AI가 발병하면 위험도 평가 없이 ‘최대’ 범주인 반경 3㎞까지 그 어떤 요인도 고려하지 않고 예방적 살처분이 이뤄지는 게 거의 관행화돼 있다. ‘탁상행정 살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 11월 발병해 2017년까지 계속된 AI로 국내에서 약 4000만마리가 살처분됐는데, 이중 약 3분의 1은 발병농가 밖의 ‘예방적 살처분’이었다.
우리는 살처분에 의존해 방역실패를 면피하고 있는 게 아닌지 벌써 자성했어야 한다. 근본적 전환이 없다면 언젠가는 모든 생명을 ‘예방적 살처분’하고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 못할 것이다.
핵심은 문제의 원인 진단에 있다. 정부는 야생철새에게 AI의 원천적 원인을 돌리는 것 말고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AI로 인한 희생이 큰 이유는 열악한 대규모 공장식 축산의 만연 때문이고 차단방역 조치 역시 매우 허술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살처분하고 보상금 받았으면’ 하는 일부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 또한 심각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혹자는 방역실패가 살처분이 잘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정부는 최근 ‘예방적 살처분’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거꾸로 가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한술 더 떠 정부는 지난겨울 AI 살처분 마릿수가 650여만마리인 것을 전년과 비교해 ‘살처분 피해가 줄어든 것이며 정책적 효과’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4000만마리 가까이 살처분한 역대 최악의 AI 사례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말장난을 해서는 안된다. 그보다 동물 폐기처분에 의존하다시피 해온 방역 프레임의 근본적 전환과 공장식 축산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
김현지 (사)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