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 ‘각계 인사 초청 라운드 테이블’에서 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왼쪽 두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북 식량 지급 가능한가
美, 제재완화 언급 이어 문 대통령도 트럼프에 비용 부담 의사 제시
쌀 대체지급설 모락모락
대북제재 위반 논란 피하고 공단 가동 재개할 수 있어
북측 식량난 해소에도 도움 국내는 공급과잉 문제 덜어
금강산관광사업도 주목 연간 500억 넘는 대금 쌀로 지급 땐 국내 큰 영향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 유인책으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가동 등 남북 경제협력(이하 남북경협)사업 재개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농업계가 이 사안에 비상한 관심을 두는 이유는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 북측에 줘야 할 대금을 식량 등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이 거론돼서다.
미국은 제재완화를 줄곧 요구해온 북한에 틈을 주지 않다가 13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제재를 완화하는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는 전향적 메시지를 날렸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 “북한에 수십억달러를 퍼주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말해 제재를 완화하더라도 미국이 관련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통화에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달라”고 말한 것은 북·미 회담의 긍정적 성과 도출을 위해 남북경협 등 한국이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의 제재완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남북 경제공동특구와 평화관광, 어떻게 준비·추진할 것인가’란 주제로 행사를 갖고 ‘남북경협’을 부각시켰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구로갑)은 “통일부가 그동안 신중하게 해왔던 것과 달리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남북경협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금강산관광과 관련해 현대아산이 먼저 예약이라도 받으면 이로써 우리 국민의 의지를 미국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19일 발표한 ‘비핵화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 해제’ 보고서를 통해 “남북경협이 비핵화를 촉진하는 기관차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쌀 대체지불 거론 이유는=남북경협에서 현금을 대체하는 지불수단으로는 쌀을 포함해 분유·의료품 등 군수물자로 전용될 여지가 거의 없는 품목이 꼽힌다. 북한은 2007년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지급할 쌀을 구매해달라고 요청한 전력이 있다. 북한이 현금 대신 받아들일 수 있는 유력한 현물로 쌀이 지목되는 이유는 북측의 만성화된 식량난과 관계가 깊다.
특히 쌀과 관련해선 김현권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이 지난해 10월 ‘개성공단과 유엔 대북제재의 연관성’을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의원은 보고서에서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 중 개성공단과 연관될 수 있다고 통일부가 꼽은 2개 조항과 자체적으로 선정한 5개 조항을 모두 검토한 결과 북측 근로자 급여를 쌀로 지급하면 대북제재 위반 논란을 피하면서 공단 가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4년 기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는 5만2004명으로, 이들에 대한 연간 총급여는 7963만869달러였다. 보고서는 이를 국제 쌀값으로 환산해 중국쌀 도매값(1t당 709달러)을 적용하면 연간 11만2000t, 태국산 장립종값(1t당 417달러)을 적용하면 연간 19만t을 북측에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가 국내산 공공비축미를 국제 쌀값으로 환산해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으로 지급하면 대북제재를 피하면서 국내 쌀 공급과잉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김 의원의 판단이다.
금강산관광은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 미국의 정무적 판단이 요구되는 개성공단 가동보다 먼저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아산은 1998~2008년 금강산관광의 대가로 북한에 4억9000만달러를 지급했었다. 연간 500억원이 넘는 금액이어서 대금 지급이 쌀로 추진된다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