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터스텔라>는 악화된 기상환경과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한 인류의 분투를 다룬다. 이 영화를 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식량자급률 최하위를 달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렸다. 저조한 식량자급률은 언젠가는 터질 위험요소로, 국민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다줄 수 있어서다.
바닥 수준의 자급률을 보이는 ‘밀’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국산 밀의 가격경쟁력 향상은 외치면서도 정작 문제 해결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밀산업 중장기 발전대책’은 그동안 소외돼왔던 밀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수매비축은 밀 생산농가에 활력을 주고, 품질등급제 도입은 고품질 밀 생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대책은 국산 밀 품종연구 지원이다. 고품질 밀 품종은 하루아침에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적인 다국적 종자기업은 수십억달러를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밀 생산 선진국에선 한 대학에만 수십명으로 구성된 육종연구팀이 꾸려져 신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국가적 투자와 산학연의 연구개발 의지를 뒷받침해줄 적절한 지원이 부족했다.
이제 막 순풍을 탄 고품질 국산 밀 육성이 탄력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몇가지 제시해본다. 첫째, 국내 환경에 맞는 유전자원을 다양하게 확보하고 첨단 육종기술을 빠르게 적용해야 한다. 국내에는 밀 유전자원 풀(유전정보의 총량)이 빈약해 유전적 다양성이 결핍돼 있다. 국내 밀가루 수요의 약 30% 이상이 면(유탕면·중화면)에 쓰이는 경질밀을 요구하는 데 반해 지금까지 개발은 중간질·연질밀 등 박력분용 품종에 집중돼 있었다. 지난해 7월 2300여명의 전세계 과학자들이 밀 유전체 해독을 13년에 걸쳐 완료한 만큼 국내 밀 연구도 이를 활용한 과학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둘째, 연구 인프라 확충이다. 밀 신품종 육성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고 팀워크가 요구되는 종합연구분야여서 전문인력을 양성하기에는 다른 연구분야에 비해 불리한 점이 있다. 논문 실적(건수)을 중시하는 학계의 분위기는 육종연구분야에 대한 기피 경향을 더 부추겼다. 신품종 개발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연구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차별화된 국산 밀 정책과 가공업체·생산자·연구자간 혼연일치된 열정이 필요하다. 지금껏 명맥만 유지돼왔던 밀 육종연구는 농식품부의 지원을 받은 산학연이 ‘경질밀 육종연구’를 시작하고, 농촌진흥청이 ‘밀 연구팀’을 출범시키며 동력을 얻었다. 이제 눈높이가 달라진 국민에게 묻는다. 고품격의 맛과 신선함은 물론 국민건강을 책임질 국산 밀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육로와 바다를 건너오며 신선함을 잃은 수입 밀 제품을 먹을 것인가.
서용원 (고려대 생명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