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광물 확보이어 중요 과제…곡물 파동·통일이후 대비 필요 해외농지 개척 민간기업 ‘분투’…中·日 전략적 지원책 본받아야
“석유나 광물자원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식량 확보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쌀값이나 사료값이 너무 올라서 대북 지원을 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미국) 순방 이후 귀국하면 해외식량기지 확보 방안을 마련토록 추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연해주와 같은 지역의 땅을 30∼50년 장기임차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통일 이후에 대비해 7000만 민족이 먹고살 대책이 필요하다. 해외 부지 확보와 같은 것을 정부가 앞장서 하고 경영은 민간이 나서 할 수 있을 것이다.”(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 기내 간담회)
2007∼08 글로벌 식량위기 이후 식량자원 확보는 국가 생존력을 지키는 ‘안보’의 문제가 됐다. 식량자급률이 26%대에 불과한 우리나라에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쌀을 제외한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양곡의 95%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세계 5위 곡물 수입국이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통일 이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척박한 농업 환경을 감안하면 해외 농지 확보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정부는 2009년 해외농업 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해외에 눈을 돌리는 민간 기업, 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농·어업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전체 산업 해외 직접투자의 0.2∼0.9%에 그칠 정도로 미약한 실정이다. ‘저수익·고위험 사업’인 농업 특성상 민간 기업, 단체의 투자 유인이 어려워 ‘식량안보’ 차원에서 투자·유통 과정에 정부의 전략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시아, 러시아에서 중남미까지
해외 농지 확보는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국정 우선순위로 추진됐다. 1960, 70년대에는 정부 주도로 남미의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 농업이민을 추진하고 현지 농장을 건설했으나 현지 정보와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다. 1990년대 들어서야 민간 기업, 단체들이 러시아 연해주,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해외에 진출한 민간기업은 52개로 18개국에서 29만7000여ha를 확보해 이 중 57%인 17만여ha에서 농산물을 경작하고 있다. 연해주와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 지역에 진출한 사례가 많다. 안정적으로 농지를 확보할 수 있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러시아 연해주에는 현재 현대종합상사, 대순진리회, 유니베라 등 8개 기업·단체가 진출해 있다. 이 대통령이 해외 식량기지의 사례로 연해주를 언급한 것은 대북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남북관계 진전을 전제로 북한 노동력을 현지에서 활용할 수 있고, 운반거리가 짧아 북한에 직접 식량을 지원하는 것도 용이하다. 통일 후에는 우리나라의 식량기지 역할을 하기에 유리한 위치다. 하지만 관개수로, 저장·수출시설과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고, 기후·토질 문제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한계도 적지 않다.
2009년 9000ha를 확보해 밀, 옥수수 등을 경작하는 현대종합상사는 2012년까지 3만ha를 확보해 곡물 10만t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철저한 사전준비와 현지 인력 채용을 통한 현지화 전략, 최신 농기계 투입 등으로 비교적 빠른 시일 내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러시아 정부가 연해주 등 3곳에 추진 중인 항구 시설이 갖춰지면 컨테이너선을 통해 수확량의 일부를 국내 반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는 8만5000ha 농지에서 옥수수를 재배하는 충남해외농업자원개발(코메르씨엔)이 활동 중이다. 이모작이 가능한 날씨 덕분에 한해 85만t을 생산하고 있으며, 대부분 전분·올리고당 원료용으로 국내 반입된다. 최근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도 농지가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지가가 저렴하다는 점에서 해외 식량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종합상사가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러시아 연해주 농장. 현대종합상사는 지난해 경작 규모를 3500ha로 늘리고 콩 5400t, 옥수수 2400t을 수확했다. 현대종합상사 제공
◆발 빠른 일본·중국의 식량자원 확보전
해외 농지 확보에 나선 대표적인 국가들은 절대적으로 농지가 부족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와 이집트, 리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 일찌감치 ‘식량안보’ 전략을 세운 일본, 중국 등이다.
특히 일본은 자국 내 경지면적의 3배에 달하는 1200만ha의 해외 농지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앞서 있다.
1973년 미국이 콩 수출을 금지하자 식량수입국을 다변화하고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해외농지 확보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성공한 투자 사례가 브라질 세하두 농업개발 사업이다. JICA(일본 국제협력단)을 통해 브라질 정부와 협력해 1979년부터 2001년까지 22년간 34만5000ha를 개발했다. 여기서 생산되는 콩은 일본으로 들여온다.
해외 자원 ‘싹쓸이 쇼핑’에 열을 올리는 중국은 아프리카, 중남미에 농경지를 집중 구입하고 있다. 중국의 농·어업 분야 순대외직접투자는 2005년 약 1억달러에서 2009년 3억4000만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중국 농업부는 농업 관련 기업의 해외 토지 구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우리 정부의 해외농업투자 지원 규모는 말하기 민망할 정도”라면서 “광물이나 에너지와 달리 ‘자원’이라는 인식이 약하고 ‘식량안보’에 대한 위기의식도 떨어져 일본, 중국처럼 선제적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