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주재기자가 보내온 사진 속의 아주머니는 분명 울고 있었다. 다 키운 배추를 갈아엎는 트랙터 뒤를 따르며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땅심 돋우고 씨 뿌려 부단히도 공들인 놈들인데 그걸 갈아엎어야 했으니….
지난 2월, 살처분 소의 매몰현장을 비쳐준 TV 장면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놈들의 곡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리 농장도 아니고 이웃 농장 친구가 감기(구제역)에 걸렸다는 딱 그 이유 하나로 나는 죽소’ 하는….
올해도 어김없이 원예작물의 선제적 산지폐기와 가축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이 있었다.
겨울배추를 필두로 산지폐기는 대파·양파·양배추·주키니호박 등 작목을 가리지 않았다. 올들어 최근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농가가 산지폐기한 물량은 배추 4만6000t, 대파 4872t, 양파 2만2000t 등에 달한다.
예방적 살처분 역시 1월말 경기 안성과 충북 충주의 젖소·한우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 살처분한 전체 우제류 2292마리 중 2069마리가 ‘예방적’이란 이름 아래 유명을 달리했다.
뭐랄까? 요즘 농촌을 목도하다보면 이처럼 공든 탑을 무너뜨려야 하는 현실 앞에 한숨이 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애써 키운 농산물을 갈아엎는 게 도대체 어떤 합리성에 근거한 ‘시추에이션’인지, 아무 상관 없는 소·돼지를 인근 농장에 병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생매장하는 게 과연 진실에 부합하는 행위인지 의문이 들어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어불성설의 현실이 매년 또는 해를 걸러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존중이니 뭐니 하는 고상한 가치는 차치하고 생태계의 질서나 자연의 섭리 차원에서만이라도 좀 보자. 사람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고 뭇 주검들을 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잘 길러서 고맙게 먹어주는 게 도리 아닐까.
물론 선제적 산지폐기와 예방적 살처분의 경제논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구조에서, 소비촉진 등 갖가지 방법으로도 가격지지가 안될 때 가장 빠르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 공급량 감축이고 산지폐기일 것이다.
하지만 수급안정사업이 시작된 게 1995년임을 감안하면 무려 25년째 산지폐기가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 긴 세월 동안 왜 공든 탑을 무너뜨려야 하는 현실은 도무지 바뀌지 않고 있을까. 남으면 갈아엎고 모자라면 수입하는 것, 이게 무슨 농정인가.
예방적 살처분도 그렇다. 축산물이 우리나라 전체 먹거리의 절반(생산액 기준)을 넘보는 상황에서, 악성 전염병이 돌 경우 생산성 감소를 막기 위해선 접촉이나 전염의 가능성이 있는 주변 동물을 미리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대량 살처분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기에, 살처분의 3분의 2 이상이 예방적 살처분인 데다 살처분작업에 투입된 이들의 정신적 고통이나 매몰지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 등 피해가 막심하기에, 정부는 2011년부터 살처분정책이 아닌 백신정책을 도입한 것 아닌가. 백신정책을 도입했으면 제도를 공고히 해 대량 살처분만은 막아야지 백신을 쓰면서 살처분까지 병행하는 건 한마디로 무대책에 다름 아니다.
제 기능을 못하는 부실한 제도와 별개로, 농가들의 자성 역시 필요하다. 한번 뜨면 대박 나니 일단 심고 보자는 심리, 백신접종과 방역과정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해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 제도와 정책에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인간이 인간들의 논리에 가장 충실해 결정한 것이기에 선제적 산지폐기와 예방적 살처분은 냉혹하긴 하지만 일견 ‘인간적’인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농부의 눈물이나 가축들의 속절없는 신세 앞에서, 보편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 ‘인간적’이라는 용어가 ‘너무나 비인간적’으로 들리는 요즘이다.
이승환 (농민신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