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으로 기억한다. 그해 겨울 경기 동북부 일대에 폭설이 내려 많은 시설하우스가 무너졌다. 급히 찾은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우스 10동 중 8동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너진 하우스 비율을 기억하는 건 당시 현장을 안내한 농협 직원의 설명 때문이다. “이곳의 임차농 비율이 80%쯤 돼요. 무너진 하우스 비율하고 똑같죠. 보통 임대차가 3년단위로 이뤄지다보니 임차농 하우스는 부실하게 지어졌어요.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
4년이 흐른 2005년 가을, 그곳 농가들로부터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대규모 택지개발이 추진되면서 토지·영농손실 보상을 둘러싼 한국토지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농민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토지보상 규정을 훑어보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막상 농가들의 요구는 영농손실보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민들로 구성된 ‘○○면 시설채소대책위원회’ 회원 180명 가운데 땅을 한평이라도 가진 이는 4명(2.2%)뿐이었다. 대부분 임대차계약서도 없이 농사를 짓다보니 쥐꼬리만 한 영농보상금마저 지주와 나눠 가져야 했다. 지주들은 각종 보상금에 아파트·상가 분양권까지 돈벼락을 맞았지만, 임차농들은 쪽박을 찬 것이다.
한국의 임차농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봉건시대의 소작인에서 이름만 임차농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의 경제적 위치는 그대로다. 농지가 집단화된 곳에선 임차료가 연간 농산물 생산액의 50%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병작반수제(竝作半收制·지주와 소작인이 소득물을 반씩 나누는 제도)와 다를 바 없다. ‘땅’에 대한 한국인의 유별난 애착,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차농문제를 우리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해방 직후 농지개혁법 제정으로 한때 20% 밑으로 떨어졌던 임차농지 비중은 2015년 50%까지 치솟았다. 그해 임차농지의 49.9%는 비농민 소유였다. 2년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3개 지역 3797필지의 임대차를 조사했더니 42~57%가 불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을까. 우선 법에서부터 그런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은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투기적 농지소유를 막고, 농지보호를 통해 식량자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원칙은 1990년대 들어서 급격히 무너졌다. 1990년 영농조합을 시작으로 농업법인의 농지소유가 허용됐다. 1996년엔 농지법이 제정되면서 도시거주인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법 시행 전부터 소유한 농지의 임대차도 이때 합법화됐다. 2003년에는 도시민도 1000㎡(303평)까지 주말영농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됐다. ‘농지법이 개정될 때마다 농지값이 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농지법 제6조 2항엔 경자유전 예외 규정이 10건이나 나열돼 있다.
하위법령은 더 심각하다. 농지를 공장·택지로 전용할 때 부과하는 농지전용부담금 규정은 사문화되기 직전이다. 부담금 면제·감면 규정을 프린트하니 A4용지 9장이나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농정개혁의 화두로 ‘직불제 개편’을 제시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해 논밭을 가리지 않고 농지면적당 일정액의 직불금을 지급하는 게 뼈대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구상이다. 공익형 직불제에 대한 정치권이나 현장농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그렇지만 임대차문제 해결 없이는 상당액의 직불금이 부재지주 호주머니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직불제 개편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김상영 (농민신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