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물가가 무섭게 뛰고 있어 차례 상을 어찌 차리나 다들 걱정이다. 시금치가 1년 전과 비교해 50% 올랐다. 고랭지 배추는 지난달보다 33% 올랐고. 호박도 지난달보다 45% 올랐다. 정부는 ‘물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합동상황실을 설치해 추석 성수품 가격동향과 수급실태를 특별관리하겠다고 하지만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들기.
7월 소비자 물가에서 채소류 가격은 6월에 비해 21.5% 올랐다. 26년 만에 기록한 최고의 상승률이었다. 7월 말에 쏟아진 폭우로 농산물 생산 및 유통관리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그나마 7월 채소 가격 21.5% 상승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해 최대 가속이 붙은 채소, 과일 가격을 무슨 수로 눌러 잡겠나.
◇ 식량전쟁은 조용히 밀려오는 쓰나미
정부는 이 상황을 추석을 앞둔 일시적인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설명할지 모르겠으나 결코 그건 아니다. 영국 정부의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포어사이트>가 올 1월 발표한 ‘세계 식량과 농업의 미래, 지속성을 위한 도전과 기회’라는 보고서에는 ‘먹을거리를 싸게 사들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40년 간 가격폭등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농수산물과 식료품 즉 먹을거리의 가격폭등이 사회불안과 폭동, 정치적 격변으로 확대되는 것이 21세기 지구촌의 특징이다.
이집트는 기원 전 3천 년 전 인류 최초로 빵을 만든, 빵 없이는 못사는 나라이다. 그러나 밀가루 자급률은 50%에 불과하다. 이집트 정부는 서민들을 위해 국영 빵집을 통해 빵을 싸게 공급하고 있다(일반 빵 가격의 1/5~1/10).
그런데 지난해 이집트에 밀을 수출하던 러시아에 흉작이 들어 밀 공급이 여의치 않았다. 거기에 밀가루 사재기, 빵 사재기가 번지면서 서민, 노동자들은 빵을 공급하든지 폭등한 빵 값만큼 임금을 올리라며 시위를 시작했다. 나중에는 의사 변호사 등 상류층까지 합세해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유혈사태에 이른 것이다.
쌀도 마찬가지이다. 필리핀은 벼농사를 3모작으로 짓던 1960년대 아시아 최대의 농업국. 그러나 지금은 세계 최대의 쌀 수입국이다. 최근 국제 쌀 가격이 2배로 뛰면서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가 쌀 수출을 통제했다. 필리핀 당국이 일반미의 절반 가격으로 정부미를 풀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서민들은 가족이 교대로 정부미 판매소에 나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시위와 폭동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농사짓던 땅을 공장, 골프장, 아파트 택지, 고무농장으로 바꾸면서 생긴 재앙이다.
쌀이 모자라면 쌀이 넘치는 나라에서 사오면 된다? 이제는 어림없는 이야기이다. 지구촌 나라들 간에 식량전쟁이 시작된 건 이미 오래 전이다. 식량 폭등으로 인한 사회적 격변을 ‘조용히 밀려오는 쓰나미’(silent tsunami) 라고 부르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 공정사회는 땅과 바다, 농어촌에 공정한 사회
우리나라의 경우 쌀 생산 기반이 아직은 버티고 있고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 오기까지 하니 쌀은 비축돼 있다. 그러나 쌀을 빼고 밀, 보리, 옥수수, 콩 등 다른 곡물만 따지면 자급률 5% 라는 식량후진국 수치가 나온다. 전체 곡물자급률은 25% 선. OECD 30개국 중 26위나 27위에 불과하다. 국제 쌀 가격도 뛰고 있어 쌀 의무수입량에 들어가는 비용도 커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 중국은 식량자급률을 높이고자 발버둥 있는 중인데 우리는 오히려 목표치가 내려가고 있어 걱정이다.
2009년 7월 녹색성장위원회 보고서는 “국제협력을 통한 안정적 식량 수급체계 구축”을 내걸고 있다. 국제협력이란 사다 먹는다는 뜻이고 대외의존도를 계속 높이겠다는 의미이다. 이게 무슨 녹색성장인가?
농사짓는 땅은 아파트, 공단 등으로 바꾸고 4대강 사업 한다고 하천부지 1만5천 헥타르도 없앴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식량정책은 식량안보차원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주의 정책에만 묶여 있는 셈이다.
토목건설 프렌들리라 해서 농업을 더 이상 폐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정 안되면 사다 먹는다는 무식한 소리는 이제 하지말자. 공정사회 구호는 대기업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은 농어촌에서 먹을거리를 가꾸어내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먹을거리를 다루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먹을거리 정책을 나라의 중심에 놓아야 할 때이다. 먹을거리는 생명의 원천이고 이제는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