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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식량자급을 다시 생각한다 
정부, 곡물·종자 자급률 대폭 높여 국제환경 변화 속 식량주권 지켜야 한·일 관계가 여전히 좋지 않다. 올 7월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갖고 무역제재에 나섰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한 것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주요 첨단소재는 일본 기업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관련 제품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들은 물론 정부를 크게 긴장시켰다. 분노한 국민은 반일·반아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투자와 국산화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식량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 식량의 해외의존도는 대단히 높다. 대부분의 막걸리는 수입 쌀로 빚어진다. 각종 면류·빵·케이크·과자 등에 사용되는 밀가루는 거의 미국이나 호주에서 수입된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6.7%, 곡물자급률은 21.7%에 머물러 있다. 몇몇 작물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예컨대 밀과 옥수수, 콩은 각각 0.7%, 0.7%, 6.3%만 국내에서 생산된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인들의 육류 소비량이 빠르게 늘면서 가축에 먹일 곡물사료 역시 외국에서 다량 수입한다. 그래서 국제곡물가격이 오르면 축산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음식의 궁극적인 출발점은 종자라고 할 수 있다. 씨앗과 관련된 현실 역시 우려되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종자자급률은 30% 이하로 추산된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양파 28.2%, 사과 19%, 배 13.6%, 포도 4%, 그리고 감귤은 2.3%의 종자자급률을 보인다. 한국이 1년에 지출하는 종자 수입비용은 약 15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따라 한·일 갈등으로 빚어진 부품소재 국산화 논의가 우리의 먹거리 보장, 식량주권의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먹거리 보장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된다. 식량주권은 자국 문화에 적절한 음식과 농업체계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먹거리 보장과 식량주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공공적 개입과 노력이 필요하다. 식량주권은 초국적 기업과 자유무역주의에 의해 황폐화된 농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식량 생산과 관련된 결정을 시장에 맡기면 국내 농업·농촌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와해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공산품보다 더 중요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먹거리다. 이 간단한 진리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기후변화가 현실이 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한파나 홍수·폭염 등이 반복되고 있다. 온난화에 따라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농작물 분포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전반적인 세계경제의 불안정 속에서 주요 강대국간에 갈등과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국제환경의 물리·정치·경제적 위험은 식량 생산과 국제교역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두가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중앙정부는 곡물자급률을 대폭 높이고, 종자의 해외의존성을 낮추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농림축산식품부 단위에서 접근해서는 안된다. 범정부적으로 식량 생산과 관련된 장·단기적 계획을 마련하고,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으로 다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사회적 약자나 광의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재난상황에서의 먹거리 보장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진·홍수·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지역주민들을 위한 비상식량 공급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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