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말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밀 생산단지 시범운영에 대한 협의회가 있었다. 우리밀생산자단체 원로 한분은 밀을 주제로 정부가 공식적인 회의를 주재한 지 35년 만이라며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이는 정부가 밀 수매제도를 중지한 1984년을 기준으로 셈한 햇수로, 그동안의 국내 밀산업 육성을 위한 공백기간을 강조한 표현일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의 뿌리는 두말할 것 없이 ‘밀산업 육성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8월2일 입법의 마지막 관문인 국회 본회의 통과와 함께 8월27일 법 제정이 공포되면서 이달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밀은 국내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약 33㎏으로, 60㎏ 안팎인 쌀을 뒤이을 정도로 소비량이 많은 식량작물이다. 쌀 다음으로 소비가 많은 작물이지만 자급률은 1% 남짓에 불과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밀산업에 대한 법 시행을 앞두고 있으니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국내 밀을 지켜온 분들은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이 법의 목적은 밀산업 육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 밀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도모함으로써 농가소득 증대 및 국민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총 20개의 조항으로 구성돼 국내 밀 생산·저장·유통·가공·소비까지 밀산업 활성화를 위한 주체범위와 지원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밀산업 활성화를 위한 첫 단계로 국산 밀은 용도별 소비량에 맞춰 계획생산을 우선하면서 대량 소비처를 발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곡의 계획생산과 용도별 수매를 통한 구분 저장, 제분까지 이뤄져야 한다. 수입 밀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국내 대형 제분회사가 참여하기에는 국산 밀의 생산량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기존 영세업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별 거점을 지정해 제분시설의 개선을 유도하고, 동네빵집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는 소형 제분기를 지원해 용도별로 특성화할 필요도 있다.
두번째로 국산 밀을 사용하는 업체들의 인증제 도입이다. 우리밀의 품질에 대한 신뢰성 회복과 건강하고 안전한 원료 제공, 가공업체에 균일한 품질의 원곡과 밀가루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마지막으로 생산된 원료의 품질을 등급별로 수매할 수 있는 기준 설정 및 밀가루 품질에 따른 블렌딩(혼합) 기술을 확립해 수확 후 품질관리에 대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수요자 중심 운영으로 현장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줘 가시적 효과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밀이 나아가야 할 길을 대승적으로 모색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밀산업 육성법의 요체다.
국민에게는 국산 밀의 현주소 및 수입 밀과 차별화된 장점을 알려 소비를 촉진시키고, 비축 관리를 통한 안정적 원료 공급, 군대 및 학교급식 등 공공소비부터 추진돼야 한다. 향후 식생활 패턴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국민의 안전한 식량공급을 위해 밀산업 육성법 시행과 함께 국산 밀이 제자리를 찾는 기회가 되기를 고대해본다.
박태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밀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