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시대] 코로나19로 각국 식량 비축전 우리도 두차례 곡물 파동 겪어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등 안정적 물량 확보대책 세워야
인류 역사의 분기점으로 ‘BC’와 ‘AD’가 있다. BC는 영어 ‘Before Christ(그리스도 이전)’의 약칭이다. AD는 라틴어 ‘Anno Domini(그리스도의 해)’에서 왔다. 물론 이는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둔 연대 표기로,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00년 후 우리는 또 다른 BC와 AD를 마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질병 이전(Before Corona)과 이후(After Disease)가 그것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세계 역사는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곡물자급률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가 낳은 새로운 질서에 대응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농민신문>은 다가올 ‘AC(After Corona) 시대’를 대비해 국내 농업·농촌의 기존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국제 곡물시장이 요동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여서다. 각국은 곳간의 빗장을 속속 걸어 잠갔다. 곡물자급률(2018년 기준 21.7%, 사료용 포함)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의 국가곡물조달시스템엔 문제가 없을까.
◆“식량위기, 남의 나라 얘기?”=“쌀을 사재기한다고요? 널려 있는 게 쌀 아닌가요?” 우리 국민은 식량 부족 문제에 대한 체감도가 극히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에선 식품 사재기가 기승을 부려도 우리나라엔 ‘남 얘기’다. 하지만 이는 주식인 쌀을 자급하는 데서 오는 ‘착시효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지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연평균 국내 곡물 생산량은 450만t 수준에 불과해 매년 1600만t을 수입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곡물안보에 대한 이같은 불감증이 더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잇따라 나온다. 세계 쌀 수출 3위 국가인 베트남은 3월24일 쌀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가 4월12일 일부 허용했다. 밀 수출 1위 국가인 러시아 역시 3월20일 곡물 수출을 일시 중지했다. 식량 부족 국가인 필리핀·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정부 주도로 식량 비축을 서두른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선 태국산 장립종 쌀값이 3월말 이후 치솟았고, 급기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4~5월 식량공급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곡물터미널’ 가동 등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해야=“급할 때만 대책을 찾다가 상황이 사그라지면 꼬리를 내리는 게 그간 우리의 식량안보이자 곡물안보 수준이었죠.” 식량 문제에 정통한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2000년대 들어 2006~2008년, 2010~2011년 두번의 곡물 파동을 겪는 동안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도, 정부도 시나브로 손을 놓았다는 자조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정부의 자세가 완전히 탈바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체적으로는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을 이참에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은 대외 의존적인 곡물 수입 방식에서 벗어나 민관이 합동해 해외 곡물 유통사업에 진출, 일정 물량을 독자적으로 들여오는 체계를 의미한다.
민간 분야는 이미 움직였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지난해 9월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 미콜라이프항에 국내 최초로 연간 250만t 규모의 곡물수출터미널을 완공했다.
민간이 구축한 이 곡물터미널을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정부가 지분 투자를 통해 앞으로 산지 ‘곡물엘리베이터(수출용 저장 창고)’를 구축,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곡물을 국내에 신속히 들여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19 이후 대비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1차 회의를 가졌다. 농식품부는 TF에서 기획재정부와 함께 경제·산업 분과에 편성됐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조만간 농식품부 내에 별도의 TF를 구성해 ▲국가곡물조달시스템 구축 재추진 ▲‘언택트(Untact·비대면) 경제’ 확산에 대비한 농산물 유통경로의 대대적 재편 ▲‘휴먼·디지털·그린 뉴딜’에 부응한 농업 인력 확충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spur222@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