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중순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식료품점 진열대가 텅텅 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 주민들이 빵·물·화장지 등 물품들을 대량으로 사재기한 탓이다. 사진=연합뉴스
AC시대 (2)기본이 기본이다
먹거리 불안 땐 사회 혼란 심하면 정권 몰락할 수 있어
반농업정책 한국도 위기 경지면적 해마다 줄고 식량자급률 갈수록 추락 후계인력 매년 쪼그라들어
물자 이동 막혀 경제 타격 제조업·금융 등 기본 탄탄히 감염병관리체계 강화 목청도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전세계 국가들이 기본 방역수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코로나19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몰고온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사람과 물자간 이동이 막히면서 식량과 물품 부족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미흡한 의료시스템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생산과 의료, 먹거리 등 기본을 간과한 세계의 후폭풍이 심상찮다.
◆생산·의료…기본부터 돌아봐야=생산은 산업활동의 근간이다. 본래 자국 내에서 필요한 물자를 만드는 것이 생산의 역사다. 그러나 글로벌시대의 생산은 다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선진국들은 중국·동남아시아 등 남의 나라 땅에 공장을 짓고 기계를 돌린 지 오래다. 현지의 값싼 노동력과 새로운 시장 확보라는 요인이 촉매제가 됐다.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생산구조가 코로나19 여파로 역풍을 맞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본 미국에서 최근 마스크·장갑 등 의료물품 공급에 제동이 걸렸다. 문제는 생산에서 비롯됐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중국 등 해외 생산기지에서 의료 소모품을 만든다. 수익성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폭탄을 매기는 무역정책을 펼쳤다. 높은 관세는 의료물품 수입에 차질을 불러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중국 정부가 품질 관리를 이유로 의료용품 수출 제한 규제를 만들면서 수입 난항이 심화하고 있다.
성곽시대로의 복귀가 회자되는 시국이다. 의료용품뿐 아니라 다른 물자의 이동에도 이상이 발생하면서 식량안보와 경제적 타격 문제가 제기된다. 2차 코로나19 또는 신종 감염병의 발생은 생산구조의 역풍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전문가들이 위기 속에서 생산과 같은 기본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재정과 금융, 농업과 제조업, 사회적 자본 등 기본을 견고히 함으로써 경제의 회복탄력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는 감염병 대응의 기틀인 방역과 보건의료의 중요성 역시 절감하게 했다. 이에 따라 지속적인 방역 지원을 강조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와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최근 “스페인독감의 경우 방역 조치를 더 지속한 지역에서 더 높은 경제 성장과 고용 증가율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간 소홀히 했던 감염병예방관리시스템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16일 성명을 내고 “감염병전문병원이 없다보니 초기 코로나19 환자 치료 과정에서 부실·혼선이 빚어졌다”며 “5개 권역별로 1개 이상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사태에서 막중한 역할을 한 공공병원들은 의사 인력의 30~40%를 공중보건의에 의존하고 있다”며 “공공병원에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국립공공의료대학 설립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업도 기본에 충실해야=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농업분야도 ‘기본’이 새삼 주목받는다. 사람들에게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충분히 공급하는 기능을 말한다. 기본이 흔들리면 우리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다. 시위나 폭동이 일어날 수 있고, 심한 경우 정권이 몰락할 수도 있다. 2011년초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을 휩쓴 재스민 혁명도 결국은 기본을 지키지 못해 일어났다.
‘식량안보’로도 표현되는 이 기본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주식인 쌀이야 자급을 이뤘지만, 1인당 한해에 30㎏ 넘게 소비하는 밀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콩과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식량자급률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1.7%까지 떨어져 20%선 붕괴를 눈앞에 뒀다. 정부는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계속 낮추고 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농지의 확보 및 보전’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과거 200만㏊가 넘던 경지면적은 2019년 158만957㏊까지 쪼그라들었다. 기업도시·혁신도시 조성 등에 대규모 농지를 내어준 데다 대체농지 지정제도 폐지, 농업진흥지역 해제 같은 ‘반농업적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농업 후계 인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하는 것도 농업분야에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후계 인력이 부족하면 식량자급률 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 농업 생산 자체가 크게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으로 40세 미만 농가 경영주는 6859명으로 2018년의 7624명에 비해 10%나 줄었다. 2017년 1만명선이 재붕괴된 데 이어 매년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기본이 크게 흔들리는 셈이다.
최근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농촌현장에서 일손부족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농업 인력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도시 지역의 유휴 인력 등을 농업현장에 원활하게 공급하는 체계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