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주유천하 (168)‘농자좌우지대본’이라 조선시대에는 농사짓는 사람을 천하의 대본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좌우의 대본이다. 농자에겐 좌도 없고 우도 없다. 더 나아가면 좌도 있고 우도 있다. 좌우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 농자다.
언젠가 한번 쓴 것 같은데, 좌(左)는 ‘장인 공(工)’ 자가 들어가므로 공부하는 데 주력한다. 우(右)는 ‘입 구(口)’ 자가 들어가므로 먹는 문제에 집중한다. 좌파는 공부하는 사람이고, 우파는 먹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농자는 공부도 하면서 동시에 먹거리를 생산하는 자에 해당한다.
우선 땅이라는 성질이 그렇다. 음양오행에서 볼 때 토(土)는 중앙을 상징한다. 동서남북 모두에게서 추종을 받는 성질이 있다. 동서남북 네 귀퉁이의 모든 요소를 중앙 토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토를 상징하는 색깔이 황(黃)색이다. 황제는 사방 귀퉁이를 모두 포괄하는 인격을 가리킨다. 사주팔자에 토가 많으면 신용이 있다고 본다. 돈 빌려 가면 꼭 갚는 사람이 팔자에 토가 많은 사람이다. 신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옛날에 머리 깎고 스님이 되려고 큰스님 방에 갔더니만, 큰스님이 문도 안 열어보고 ‘네 생년월일시를 대봐라!’고 하는 수가 있었다. 한참 있다가 ‘너는 팔자에 신심이 있으니까 중을 해도 되겠다’ 하고 승려 되는 것을 허락했다는 일화를 들은 바 있다. 팔자에 토가 있었다는 말이다.
농토문제는 해방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토지개혁이다. 당시 빨갱이로 낙인찍힌 죽산 조봉암(1899~1959년)이 남한의 농지개혁을 주도했다. 흥미로운 점은 조봉암을 장관으로 적극 추천한 인물이 인촌 김성수였다는 사실이다. 땅을 가장 많이 가진 재벌 김성수가 조봉암을 후원했던 것이다. 김성수가 죽산을 적극 미니까 다른 우파들도 크게 태클을 못 건 셈이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대지주의 땅을 몰수해 국가가 소유권을 가지고 소작농들에게 임대해주는 방식이었다. 무상몰수·무상분배이다. 북한에서 기존 소작들이 땅을 자기 앞으로 소유할 수는 없었다. 대지주 대신에 국가가 소유권을 갖게 된 것이다. 반대로 남한은 유상몰수·유상분배였지만 기존 소작농이 땅을 등기부상에 소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보다 파괴력이 컸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소작농이 농사지어 그 수확량의 30%를 5년 동안 지주에게 내면 그 땅을 자기 소유로 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기존 소작료가 수확량의 50~60%를 차지하던 것에 비춰 보면 아주 가벼운 부담이다. 해방 이후 토지개혁이 먼저 이뤄진 북한에서 소작농들이 국가에 바쳤던 소작료율은 대강 25% 정도였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 이것저것 비공식적인 부담이 더해지면 실질적으로는 40%를 국가에다 소작료로 냈다.
조봉암이 농림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주도했던 남한의 토지개혁은 기존의 부자계층을 절단 냈다. 수십칸의 기와집을 지니고 있었던 당시의 부자들은 토지개혁으로 재산이 4분의 1 정도로 줄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땅이 없던 소작농들은 난생처음 자기 땅이 생기는 경사였다. 이 토지개혁이 한국전쟁 직전에 어느 정도 완료됐다. 그래서 인민군이 밀고 내려왔을 때 남쪽 농민들의 호응이 적었다고 본다. 이미 자기 땅문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것이라고 할 때 힘이 나고 열심히 노력한다. 해방 정국에서 조봉암의 행적을 연구해온 주대환씨(67)는 ‘해방 이후에 남한 사회가 이만큼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죽산의 토지개혁 덕이 컸다’고 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봉암과 김성수의 합작품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어떤 사회가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도 농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이 담당하고, 비대면 사회가 진행되면 도시의 실업자가 어디로 갈 것인가? 20%만 일하게 되고 나머지 80%는 일거리가 없어 놀아야만 하는 사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80%를 누가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우주의 구성 요소를 지수화풍 4가지로 본다. 가장 기본이 바로 지(地), 땅이다. 지를 바탕으로 수(水)가 있고, 화(火)와 풍(風)이 있다. 그만큼 농토를 바탕으로 하는 농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 사회의 가장 밑바탕이 되고, 인간은 이 땅으로부터 이탈할 수가 없다. 4대(大)의 바탕을 다루는 농자에 어찌 좌우가 있겠는가!
조용헌 (강호동양학자·불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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