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프랭크는 바짝 말라버린 옥수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올해 91세인 톰은 미국 인디애나주 와와카의 포트 웨인에서 평생을 농부로 살았다. 열다섯 살 시절, 그는 아버지와 함께 겪었던 1936년의 대가뭄을 떠올렸다. 수십년간 크고 작은 가뭄이 있었고, 1988년에도 기록적인 가뭄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올 1~6월 포트 웨인의 강수량은 11.01인치(27.96㎝). 최악의 가뭄이라던 1936년의 같은 기간 11.67인치의 기록도 깼다. 지역TV인 채널 15에서 그는 “며칠 안에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얼마간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을 텐데, 하늘을 보니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늘에는 여전히 태양이 이글거렸다. 세계의 식량창고인 미국이 대가뭄을 맞고 있다. 미국의 가뭄으로 옥수수와 콩(대두) 가격이 치솟고 있으며 다른 농산물 가격도 잇따라 뜀박질할 기세다. 국제사회에서는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재정절벽에 이어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업과 인플레이션을 합성한 조어) 위기마저 도래하고 있다는 경고가 흘러나온다.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남미의 곡창지대에도 가뭄이 극심해 밀과 콩 작황이 예년같지 않다. 지구온난화로 속출하는 기상이변으로 지구촌에 총성없는 ‘식량 전쟁’의 서곡이 울려퍼지는 분위기다.
미 해양대기관리처(NOAA)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미국에서 가뭄을 겪고 있는 지역은 전체 면적의 55%에 달한다. 지역별 차이는 있겠지만 전국 통계상 국토의 58%가 말라붙은 1956년 이후 56년 만에 찾아온 대가뭄이다. NOAA는 지난 6월을 통계가 시작된 1895년 이래로 14번째로 덥고 10번째로 건조한 달로 기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6개주 1000여개 카운티를 자연재해 지역으로 선포한 상태다.
옥수수와 콩, 밀은 흔히 세계 3대 작물로 불릴 만큼 국제적으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보통 옥수수와 콩 가격이 뛰면 다른 농산물들은 물론 가공식품 가격도 연쇄적으로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 소비자들은 농산물 가격 상승을 처음에는 채소 코너에서 접하지만, 이내 쇠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 등 육류 코너로 옮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옥수수와 콩 등 곡물을 사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식물성 기름과 두부, 면류, 빵류, 유제품 등 각종 가공식품 가격상승으로 이어지는 애그플레이션도 일어날 수 있다. 탐 플라이티 곡물회사의 스콧 도체티 부장은 “그레인 엘리베이터(곡물창고)에 있는 농산물 가격이 소비자 가격으로 나타나기까지는 보통 3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전세계 옥수수의 36%를 생산하고 전세계 수출량의 44%를 조달하는 미국의 콘벨트(Corn belt)는 이번 가뭄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 농무부(USDA) 산하 전국농업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7월 둘째 주(7월9~15일) 기준으로 콘벨트에 속하는 18개주에서 옥수수 성장상태가 전년에 비해 크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동기에는 ‘우량(good)’ 판정비율이 50%에 달했지만 올해는 27%에 불과하다. 반면에 전년동기에는 7%에 그쳤던 ‘빈약(poor)’ 판정은 22%로 솟구쳤다.
USDA는 올해 옥수수 수확량 전망치를 1에이커(약 4047㎡)당 146부셸(1부셸=옥수수는 25.4㎏)로 12% 정도 하향 조정했다. 비가 앞으로 계속 오지 않으면 추가적인 생산량 하락도 불가피한 상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의 밀 생산도 지난해보다 22%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옥수수 세계 2위 수입국이다. 지난 2010년 옥수수 수입량은 856만t으로 수입곡물 중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콩(445만t), 3위는 밀(131만t) 순이다. 중국도 역시 옥수수의 상당량을 수입하고 있고, 아시아의 여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미국의 작황을 다른 나라들이 민감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의미다. 가뭄이 반복될 경우 곡물 수출입 쿼터가 정해지면서 물량확보 경쟁이 불붙을 수 있다.
가뭄은 에너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에탄올 생산·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2005년 에너지정책법안을 도입해 각종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미국 주유소에서는 ‘에탄올 10% 함유’라고 적힌 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가뭄의 최대 피해계층은 미국 농부들이 아니다. 농부 입장에서 말라죽는 농산물을 보면서 타들어가는 농심(農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미국 농부들은 대부분 연방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수확보험에 가입해 있다. 미 의회의 2010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수확면적 기준으로 83%의 옥수수, 84%의 콩, 86%의 밀이 수확보험에 들어있다. 미국 농부들은 그해 농사를 망쳐도 다음해 다시 농사 지을 수 있도록 대부분 보험금을 탄다.
결국 미국 가뭄의 최대 피해계층은 전세계의 도시 저소득층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도시 저소득층은 인상된 가격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USDA의 조지프 글라우버 부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저소득층은 가구수입의 상당액을 식료품 구입에 쓰기 때문에 가뭄과 농산물, 가공식품 가격인상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2007~2008년의 흉작에 따른 곡물가 폭등은 이후 30여 개국의 식량폭동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꼽히는데, 올해 미국의 흉작이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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