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경 국립식량과학원장이 국내 식량자급률과 조사료 국산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 원장은 “해외 식량기지가 있더라도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곡물을 못 가져올 수 있다”며 “최소한의 국내 자급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
식량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촌 단위에서다. 온난화의 여파로 전 세계 곡창지대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식량파동이 올 수 있으니 범국가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식량 주권 없이 국가 주권 없다”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 걸까. 지난 10일 전혜경(52·사진) 국립식량과학원장을 만났다. 전 원장은 1983년 농촌영양개선연구원(현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26년 만에 최고 자리에 올랐다. 여성 최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70년대 보릿고개를 해결한 ‘통일벼’를 개발한 곳이다. 농촌진흥청 산하이고 식량작물의 품종 개량, 재배방법 개선, 다양한 기능성 작물 연구를 진행한다.
-전 세계가 폭설·폭우·가뭄 등 이상기후에 신음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 기록적인 눈이 내렸다(인터뷰 하루 뒤인 11일에는 동해안 지역에 100년 만의 폭설이 쏟아졌다).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쌀 생산량이 12.6% 줄었다. 30년 만에 최저치(429만5000t)였다. 급격한 기후변화가 주된 원인이다. 앞으로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이상기후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빠르다는 것을 감안하면 2020년께는 온도가 2~3도 상승하고,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510~680ppm으로 높아진다. 쌀 수량은 지금보다 1.1~7.7% 정도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온난화로 병충해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산림수목과 과수 등에 큰 피해를 주는 꽃매미 같은 돌발 병해충이 그 예다. 천적도 없어 피해가 막심하다.”
-대안은 있나.
“우선 이상기후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고온에 적응하는 ‘조광벼’, 등숙기(곡식이 익는 기간) 강우에 강한 ‘한설’ 같은 품종이 그 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를 예측해 식량 생산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황정보 시스템과 수급예측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 병충해에 대해서도 저항력이 강하고 낱알이 많이 열리는 다수확 품종과 재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온난화는 농민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잘 대응하는 게 관건이다. 보리와 밀 같은 맥류의 생육기간이 짧아지고 재배지가 북으로 확대된다. 재배기술의 발전으로 앞으로는 벼·찰옥수수·감자 같은 작물을 2기작(같은 땅에 연간 두 번 작물을 심고 거두는 것)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량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해외 식량기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식량 수급 안정화의 대안으로서 해외 식량기지 개발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농촌진흥청 차원에서 해외 저개발 국가에 파견한 해외농업기술개발센터(KOPIA)를 통해 식량기지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필리핀·캄보디아·미얀마·파라과이·콩고민주공화국 등의 국가에 농업기술과 육종, 재배 노하우를 전수하는 국제협력을 통해 국격을 높이고 유사시에는 해외 식량 확보를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해외 식량기지를 위한 품종도 개발하고 있다. 동남아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MS11이라는 쌀 품종이다. 동남아의 뜨거운 기후에서 잘 자라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차진 쌀밥 맛을 잘 구현해 국내에 들여와도 손색없다.
하지만 해외 식량기지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진출하거나 개발을 검토하는 해외 식량기지는 대개 저개발 국가에 있다. 이런 나라들은 체제가 불안정하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필요한 곡물을 못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식량자급률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전 원장은 평소 언론매체 등을 통해 국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51.4%(사료 제외한 수치)다. 사료 수입량까지 포함하면 26.7%(2009년 기준)다. 2005년 29.4%에서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나마 쌀이 버티고 있어서다.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5% 수준이다.
하지만 곡물을 100% 다 수입한다고 치자. 갑자기 해외 농장에서 가뭄으로 흉작이 되거나 수입처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떨까. 당장 국민 밥상 물가가 폭등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곡물 수입이 미국·호주·중국 등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고, 다국적 곡물회사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비상시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어렵다. 수입국 다변화와 함께 식량자급률을 향상해 식량대란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식량 자급을 위해서는 밀과 보리 등 쌀 이외 작물의 자급률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밀의 경우 빵·과자·국수 등 용도에 맞는 밀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종자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생산에서 가공·판매까지 관리할 수 있는 체계화된 기술을 개발해 2017년까지 밀 자급률을 10%(현재 1.2%)까지 높일 생각이다. 맥주 맛을 높이는 보리·컬러보리 등을 개발해 보리의 자급률 향상도 꾀할 생각이다.”
-하지만 쌀은 남아돈다.
“우리나라는 쌀 자급 국가다. 의무수입 물량을 감안해도 거의 100%를 자급할 수 있다. 하지만 쌀이 남아도는 것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IMF 사태 때를 생각해 보자. 원화가 폭락하면서 많은 수입품의 가격이 올랐다. 식품가격 역시 치솟았다. 그런 상황에서 주식인 쌀이 자급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IMF 때 아무리 힘들었다지만, 그래도 굶는 사람 없이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쌀값이 안정됐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치솟는 물가 속에서 국민의 가계를 지탱해 주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쌀이다.
따라서 주식으로 꼭 필요한 양보다 좀 더 많이 쌀을 생산해 일부 비축하고 술·국수·라면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며, 남는 것은 장기적으로 수출을 고려해야 한다. 유사시에는 이들 쌀 수량을 전량 비상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다.”
<중앙일보>
수원=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