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후카가와 유키코 日 와세다대 교수
선진국 중 일본·한국만 식량자급률 50% 밑돌지만 식량 안보를 自給으로 해결할 순 없어… 농업 생산성 높이고 안정적 수입처 확보해 FTA시대 國益 찾아야
이탈리아의 나폴리근교에 있는 아말피 해안은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맑은 하늘과 티레니아해(海)는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깎아지른 듯한 하얀 바위가 자아내는 풍경은 문자 그대로 절경이다. 바위 위로는 빽빽이 이 지방 특산인 레몬 나무가 늘어서 농업관광(아그로 투어리즘)을 지탱해 준다.
농업국의 여유를 느끼게 해 주는 풍경은 정반대로 불모의 정쟁(政爭)에 날이 새는 일본을 생각하게 한다. 예외 없는 무역자유화를 요구하는 환태평양파트너십(PPT)에 참여하는 문제는 일본에선 여당 안에 큰 균열을 낳았다. 여당인 민주당의 가장 큰 모순은 PPT에 참가하는 동시에 식량 자급률 향상을 내걸고 있다는 것이다. 무역자유화 반대파는 세계적인 가격급등을 이유로, "식량 안전보장을 위해 자급력이 필요하다(따라서 보호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나는 여기서 "(일본처럼 자급률이 낮은) 한국은 왜 식량 안보에 무관심한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신흥국에서 식량 소비가 확대되고 바이오연료 수요가 증대하고 있지만, 농업에는 토지라는 제약이 있다. 최근 호주 등 세계 주요 곡물공급지의 기상이변으로 농산물 공급량이 부족해지고, 가격급등은 불안심리를 증폭시키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 열량 기준으로 식량자급률이 50% 밑으로 떨어져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이다. 세계의 곡물무역은 '메이저'라고 불리는 선진국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뿐 아니라 식량의 안전에 대한 공포가 강한 것도 한국과 일본의 특징이다. 이전에 한국을 뒤흔든 미국산 쇠고기 문제, 일본을 패닉으로 몰아넣은 '중국산 독만두' 문제는 모두 수입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자급이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와 안전성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EU, 미국과의 대형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을 해야 하는 한국은 일본과 같은 식량 자급론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자급률이 높고 수입할 곳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면 오히려 식량 안보 리스크는 높아진다. 또 열량기준으로 자급률이 낮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구미(歐美)에 비해 압도적으로 다양한 식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 아말피 해안뿐 아니라 로마나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도 피자나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를 주로 먹지 생선초밥이나 불고기, 중화요리나 동남아시아 요리 등을 일상적으로 먹지는 않는다. 더욱이 관세·비관세 장벽에 의해 내외가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외국산을 국산으로 속이려는 유혹이 커진다. 그러나 사실, 국산과 외국산의 차이는 수입품에는 검역이 부과되는 대신 상당수 국산품에는 안전기준만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자국산 상품이 외국산보다 안전하다는 것은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식량의 안전보장은 자급이 아니라 '국내 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안정적인 수입처 확보, 여기에 만의 하나를 대비한 적절한 비축제도'라는 정석(定石)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농지를 등록하는 농지뱅크 제도 등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토지의 유동화·집약과 간척지 이용,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한국 정부는 2030년에는 곡물 수입의 50%를 해외거점으로부터 들여온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 지역과 농업을 둘러싼 여러 가지 리스크(위험)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으며, 아직 성공사례도 적다. 한국으로의 공급확보뿐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 등 현지에도 공헌한다는 점을 강조해 투자처에서 정책을 변경할 위험을 줄여줘야 하고, 선물(先物)거래 등을 활용해 거래가격 자체를 안정시키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 한국은 비축이 쌀에 편중돼 있었지만, 최근에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오히려 옥수수·콩 등이다. 또 정부만 일방적으로 비축을 부담할 경우 비용면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민간기업과 기동성 있게 연계를 해 나가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비축제도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FTA가 이익을 향유하는 산업계와 피해를 보는 농업계의 대결구도처럼 된다고 하지만, 위험이 넘치는 세계에 대한 개국(開國)이 FTA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대립구조만으로는 식량 안보라는 국익을 확보할 수 없다. 관민(官民), 혹은 농공(農工)의 협력이 이뤄질 때 비로소 '한국주식회사'는 FTA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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