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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
이철호 이사장은 남북통일에 대비해 ‘통일미(米)’를 비축해야 한다고 누구보다 일찍 주장해 왔다. 이 이사장은 덴마크 왕립수의농과대학 박사(식품저장학)로, 고려대 식품공학과 교수로 30년간 근무했다. 2010년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을 설립해 전문가와 일반을 대상으로 ‘식량안보’의 경각심을 알리는 데 주력 중이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식량안보연구재단의 2012년 연구 결과 남북한이 2015년 통일된다는 가정 아래 식량수요를 예측한 결과 부족한 식량은 170만~250만t 정도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권고에 따른 정부비축미 70만t(2개월 분량)을 감안해도 100만~180만t 이 부족하다. 그는 “남북통일과 같은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오는데 우리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남북통일에 대비해 통일미 120만t 항시 비축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했다. 매년 60만t씩 2년간 모아 총 120만t의 쌀을 항시 비축하자는 것. 이 이사장은 또 “기초생활수급자 등 영세민에게 매월 10㎏의 쌀쿠폰을 무상으로 지급해, 통일 후 북한 주민들에게도 쌀 지원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남북이 분단된 지금은 오히려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기 수월한 편이다. 남북 당국이 나뉘어 있어 북측 당국에 건네주면 끝이다. 하지만 통일 후 남한 정부가 직접 북한 주민들에게 쌀을 배급해야 할 경우, 이에 대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있냐는 것. 그는 “법이 없어 통일 후 제공할 수가 없다.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국고에서 정부미를 북한 주민에게 퍼주면 감옥에 갈 수 도 있다”고 했다.
전체인구의 7%에 달하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등 영세민들에게 ‘쌀 교환권(쿠폰)’을 나눠 주고, 쌀이나 쌀 가공품(햇반, 쌀국수) 등으로 교환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이런 제도를 통일 후 기초생활수급자 등 영세민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다분한 북한 주민들에게까지 자연히 확대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쌀 10㎏은 1970~1980년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120~130㎏)을 12개월로 나눈 수치다.
이런 제도는 이미 미국에서는 ‘푸드 스탬프’란 이름으로 불린다. “영세민에게 직접 돈을 줘서 라면과 소주를 사먹게 하는 것보다, 쌀을 먹이는 것이 영양학적으로도 좋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이에 드는 예산은 약 8100억원으로 2013년 기준 복지예산(약 97조4000억원)의 0.8%다.
또 그는 “통일미 120만t 비축과 쌀쿠폰 제도를 도입하면 쌀 경작지 감소를 막아 식량안보 태세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이를 위해 “현재의 ‘저미가정책’을 ‘고미가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세민들에게는 무상으로 쌀을 주는 대신, 중산층 도시민들이 좀 더 높은 가격에 쌀을 사먹게 하는 식으로 이원화하자는 것. 지난 이명박 정부의 ‘MB물가’처럼 식품가격 등을 억지로 억눌러 농민들의 희생 위에, 도시민에게 싼 식량을 제공하는 인위적인 비정상 정책을 정상화시키자는 주장이다. 이 경우 억눌렸던 식품 가격이 한꺼번에 앙등하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그는 “남북통일 후 국제 곡물시장에서 식량부족분을 일시에 수입하면 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적어도 170만t을 국제시장에서 일시에 구매할 경우 상당한 웃돈을 주고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이런 사태는 1984년에도 이미 한 차례 경험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 급작스러운 냉해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나가는 선박을 돌리고, 웃돈을 주고 곡물을 조달하는 등의 대소동을 치렀다는 것이다.
“통일미를 2년씩 비축한 뒤 일정하게 방출하면 쌀 가공산업에도 획기적 전기가 열린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국내 식품기업은 쌀과자나 쌀국수 등 쌀 가공산업에 투자하고 싶지만, 불안정한 쌀 수급과 출렁이는 가격변동 탓에 투자를 꺼리고 있다. 때문에 쌀에 비해 수급이 안정적이고, 국제시장 곡가가 덜 출렁이는 밀을 이용한 라면, 과자, 빵 생산에만 치중하고 있다.
그는 “120만t은 통일비용으로 봐야 한다”며 “통일미 비축예산 4800억원은 2013년 외교통일예산(약 4조1000억원)의 11.8%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남한)가 당신들을 먹여살릴 준비가 돼 있다는 지속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에 따르면, 남북통일은 단기적으로는 식량부족 사태를 몰고 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식량안보를 끌어올릴 좋은 호기다. 현재 남한에 비해 60~70%에 불과한 북한의 곡물 생산수율(生産收率)을 높이는 등 과학영농을 통해 식량 생산을 금방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이 기간을 2~3년 정도로 내다봤다. 결국 남북통일 후 식량안보 조건이 개선되기 전까지 필요한 2~3년의 시간을 정부비축 통일미와 쌀쿠폰 등의 제도로 견뎌낼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당장 시작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통일미 120만t 비축과 쌀쿠폰제 도입은 북한에 보내는 신호의 하나다. 그는 “이런 신호를 북한에 못 보내면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이 중국행을 택할 공산이 크다”고 염려했다. 과거 북한에 있던 지주들이 공산정권 수립과 함께 땅과 재산을 몰수당하자 대거 남한으로 피란했다. 통일이 되면 옛 지주들이 땅문서를 들고 북의 고향으로 돌아가 경작권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잠재 공포다. 또 북한 땅 일부가 중국에 편입될 경우, 한·중 관계의 급속한 악화와 함께 신라가 삼국통일 후 ‘나당(羅唐)전쟁’을 치른 전례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 함경남도 함흥 출신 실향민인 이철호 이사장은 “남한 주민들이 또 북한 땅에 가지고 있던 소유권을 과감히 포기하는 사회적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남북이 지난 60여년간이나 분단돼 살았던 것은 통일 전 땅 문제를 풀라는 시간을 부여받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