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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서울대 교수·농업경제학
박근혜정부의 140대 국정과제에는 ‘안정적인 식량 수급체계 구축’이 포함돼 있다. 식량자급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해 역대 정부들도 이를 늘 중요하게 다뤄 왔으므로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세부 과제의 하나인 ‘해외 유통망 활용 국가 곡물조달 시스템 구축사업’은 이명박정부 때부터 추진해 왔으나 큰 진전이 없다.
2011년 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일부 민간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국제 곡물유통회사로의 정착을 목표로 출발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현재 추진 방안을 재정립 중이다. 이 전략은 일본 농협이 높은 사료곡물 수입의존도를 감안해 해외 전략으로 채택한 후 반세기가 걸려서야 웬 만큼 성공했음을 고려할 때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난관은 피할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진입 시기와 관련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 곡물 유통은 저장창고(엘리베이터)와 수송설비 등 대규모 장치성 고정자산을 요구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그런데 2011년 국내 컨소시엄이 진출할 무렵, 미국 곡물 유통 시장은 사상 최고의 호황기였다. 따라서 관련 자산 가치가 급격히 치솟아 누구도 쉽게 진입하기 어려웠다. 당시 이런 상황을 고려해 많은 전문가는 곡물시장의 경기 주기를 감안, 당장은 현장 경험을 통한 충분한 학습기간을 가지고 구체적인 진입 시기는 자산 가치가 조정되는 하강 국면을 권고했다. 이 권고가 아직 유효하다면 미국 곡물시장에 지금 눈여겨볼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2013년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140억 부셀(1부셀은 25.4㎏)로 건국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때 미국 정부는 옥수수 에탄올 의무생산량을 당초 목표보다 29억5000만 갤런(1갤런은 약 3.785ℓ) 감축했다. 그에 따라 옥수수 초과공급이 전망돼 6개월 전에 부셀당 8달러이던 옥수수 가격이 최근 4달러 수준으로 급락했다. 거기에다 남미 등의 생산 호조로 가격 하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곡물 가격 급락은 지난 수년 간 곡물 가격 상승기에 유통 관련 자산 가치에 형성된 거품 현상 붕괴를 초래할 것으로 미국 금융기관과 전문가들은 심각하게 우려를 전하고 있다. 특히, 호황기 때 지나친 차입을 통해 농지 매입과 설비 투자를 한 농민과 유통회사들이 매우 취약한 상태에 빠질 것으로 진단된다.
따라서 상황 진전에 따라 곡물 유통 관련 의미 있는 자산이 시장에 방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농협이 미국 내 곡물 유통 관련 자산의 가치 사슬에 투자를 확장한 때가 1980년대 초였다. 당시는 유례 없는 미국 곡물시장 불황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일시적 곡물 가격 하락기를 맞아 2년여 전의 가격 상승기 때와 비교해 보면 국내 상황이 너무 조용하고 지나칠 정도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곡물시장에는 항상 주기가 있다. 주기에 따른 심각성은 최근으로 올수록 커져 왔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온 역량을 집중해 시황을 관찰하고 시장에 방출되는 유용한 자산 확보를 통한 진입을 검토할 때다. 지난 2년여 동안 현지 컨소시엄 활동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을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
끝으로, 반세기에 걸쳐 이룬 일본 농협의 성공 사례를 보면 생각해볼 점이 있다. 먼저, 실수요자가 빠진 컨소시엄이었던 우리와는 달리 일본 내 최고의 사료곡물 실수요자인 농협이 직접 진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적자를 경험하는 오랜 기간에도 농협 스스로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 국민도 인내하며 기다려 줬다는 사실이다.
식량 안정화(安定化) 계획은 장기 플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