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오랫동안 막아 오던 쌀 시장이 금년에는 관세화로 바뀔 것 같다. 쌀 시장 개방의 이해득실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이번에 유예를 받는다고 해도 의무수입량이 8% 이상으로 계속 늘어나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선진국들이 쳐놓은 그물에 갇혀 백기를 드는 것이다.
그런데 쌀 시장을 개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지고 오랫동안 논란만 거듭하다보니 막상 개방할 때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한 준비나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입쌀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여러 방면에서 확장돼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수입쌀 업자들이 올려놓은 수입쌀 예찬론이 도배돼 있다. 2009년에 개정된 양곡관리법은 생산연도와 품질을 표시토록한 규정을 삭제하고 혼합유통을 허용해 수입쌀이 유통될 수 있는 길을 넓혀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정부는 밥쌀용 수입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매입자격을 완화하고 공매횟수를 확대해 2006년 43곳이던 공매업체수가 600여 업체로 늘어났다. 소비자들이 볼 수 있도록 앞면에 표기돼야할 수입자 정보도 포장 뒷면에 따로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농민이 쌀 시장 개방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정부는 개방이후를 대비하기는커녕 수입쌀의 물꼬를 트는데 몰두했다는 불만의 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쌀이 남아돈다고 쌀의 생산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온 우리 정부가 수입쌀의 유통에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UR협상이 시작된 1980년대초부터 일본은 자국 쌀의 품질에 관한 연구를 대대적으로 수행했다. 일본총합식품연구소를 비롯한 농림성 산하연구소들이 벼의 육종에서부터 재배, 수확, 도정, 유통 전 과정에서 최고의 밥맛을 지닐 수 있는 쌀 생산 유통 시스템을 개발해 표준화 했다. 식량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식미평가방법에 의해 일본곡물검정협회가 매년 전국에서 생산되는 쌀의 식미평가를 실시해 순위를 발표함으로써 쌀의 품질 등급과 가격 형성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근거를 가지고 국민에게 일본쌀이 세계 어느 나라 쌀보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고급쌀이라는 것을 교육했다. 이러한 준비가 돼 있었으므로 일본은 WTO 출범 이후 5년만에 쌀 시장을 개방하고 그들의 쌀 농업을 지켜냈다.
우리는 UR협상 8년동안 농수산부 담당 국장이 7번 바뀌었고 서기관과 사무관도 2년 이상 담당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구경꾼으로 다니다가 아무 대책 없이 WTO를 맞은 것이다. 그 이후 20년간 쌀 시장 개방 논란만 거듭해 왔다. 이제 벼랑 끝에 와서 아무 대책 없는 우리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은 수년전부터 쌀 시장 개방을 대비해 우리쌀의 품질을 높이고 완전미 유통을 의무화해서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쌀의 품질향상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 2005년부터 밥맛이 우수한 쌀을 탑라이스로 분류해 소비자가 전국 어디에서나 품질을 신뢰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를 통해 매년 1800여개 전국 쌀 브랜드 중 최고의 12개 브랜드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공인된 평가가 아니므로 쌀의 품질 등급이나 가격 형성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쌀의 품질 등급에 의한 유통체계를 수립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것이다. 특히 농촌진흥청에는 쌀의 품질평가 연구팀이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우리 쌀이 살아남을 길이 막연하다.
쌀시장 개방을 위해 우리 정부는 쌀의 고미가 정책을 오래전부터 실시했어야 했다. 쌀 시장을 막아놓고 서민물가를 잡는다고 쌀값은 계속 하락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쌀시장을 관세화하면서 1244%의 관세를 적용했고 대만은 562.5%를 적용했다. 경쟁력을 상실한 현재의 국내 쌀값이 종가세의 책정에 반영된다면 우리나라 쌀 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일찍 개선할 수 있는 때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 양곡정책 전반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